‘로열패밀리’ 김인숙은 기존 안방극장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두 얼굴을 지닌 여자 캐릭터였다. 어쩌면 염정아라는 배우였기에 가능했으리라. 헤아려보니 어느새 연기 경력 20년차다.
공교롭게도 한 작품에서 만난 김영애는 올해로 연기 경력 40년차. 뒤에서 달려오는 수많은 예쁘고 연기 잘 하는 후배들도 수두룩하다. 혹시 여배우들의 숙명처럼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신경 쓰이진 않을까. 우문현답이 이어진다.
“나는 나만 봐요. 생각해보면, 그런 걸 별로 의식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런 걸 초월하고 싶어요. 남과의 비교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이 편해지죠. 누군가를 의식하기보단 나를 보고, 내 연기에 대해 생각하죠.”
아직은 ‘K’의 눈빛이 남아있기 때문일일까. 왠지 차가운 듯 한 이미지와 달리, 인터뷰에서 만난 염정아는 옆집 언니, 아줌마처럼 숟분하고 털털하고, 솔직한 여배우였다. 비단 여배우이기 때문이 아닌, 20년간 연기 외길을 걸어온 그녀에게 슬럼프가 왜 한 번도 없었으랴. 하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슬럼프를 극복해 온 염정아에게선 ‘내공’이 느껴진다.
그녀에게 ‘다시’란 없다. 하나의 장면을 위해 한 번에 온 힘을 쏟아 붓는다는 염정아는 단 한 번의 NG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치밀함을 지닌 연기자다. ‘인간’ 염정아는 예상보다 편안한 스타일이지만, ‘배우’ 염정아는 굉장히 감각적이고 치밀하다. 스스로 노력파라 생각하는지 묻자 “다른 건 몰라도 연기 쪽에선 영리한 편”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노력파라기보단, 좀 타고났어요.(웃음) ‘내가 영리한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부분에서는 영리한 것 같다. 감정만으로는 안 되고, 계산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 계산을 하면서 하다 보니까.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아요.”
어쩌면 천직인 걸까.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에, 1991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당선되며 화려하게 연기자로 데뷔했다. 연기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단다. “연기 외에는 꿈꿔본 적이 없었어요.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해서 미스코리아에도 나갔고, 중대 연영과도 선택해서 갔죠.” 너무나 당당한데도 전혀 얄밉지가 않다.
20년 동안 다수의 작품을 거치며 표족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지만, 지금은 순하디 순한 인물보단 개성 있는 캐릭터가 사랑받는 시대가 왔다. 염정아로서는 ‘웰컴’ 할 만한 시대가 온 것이다. “예전에는 그런 캐릭터에 대해 사람들이 욕하고 그랬는데, 세상이 바뀌었죠. 청순가련형에, 그런 여자들만 좋아하는 시대였다면, 계속 하고있지 못하지 않을까요?”
염정아는 “예전엔 몰랐던 나만의 색을 이젠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20년차 연기자의 겸손하다면 겸손할 수 있는 발언이지만, 여전히 진행형이자 성장하고 있는 연기자, 염정아의 말이 무슨 의미인 지 알 것 같다.
그래도 한참 어린 20대 후배들에 대한 아낌없는 조언을 빼놓지 않는다. “스스로를 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공주병 걸리란 얘기가 아니고요(웃음). 연기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을 소모시키지 말고, 차곡차곡 쌓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는 연기자의 꿈도, 미스코리아의 꿈도. 꿈꿨던 것들을 다 이뤘어요. 앞으로는 아기들 잘 키우고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여배우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소박한 소망이다. 그렇다면 배우로서의 꿈은 무엇일까? “나이 들어도 매력 있는 배우가 돼야지 하는 생각? 나이가 들어도 섹시함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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