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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지식포럼에서 대담하고 있는 이민진 작가. |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53)은 '글쓰기의 힘'에 관한 놀라운 경험을 공유했다. 20일 오후 장충 아레나에서 '파친코와 한국의 정서'를 주제로 미국 공영방송 NPR의 문화전문기자 네다 울라비와 나눈 대화를 통해서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1989년 일본까지, 한 세기에 걸친 재일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7년에 미국에서 출간됐고 이듬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올 들어 애플TV에서 공개된 8부작 드라마의 성공으로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신드롬을 일으켰다.
작가는 19세 때부터 한일관계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1996년부터 쓰기 시작해 2007년에야 '파친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올해 새 번역으로 재출간 된 이 책에 대해 "번역을 다시 하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다. 번역을 다시 하면서 새로운 어떤 영향력이이 생길 것이라 기대했다. '파친코'는 35개 언어로 번역됐는데 한국어 번역은 가장 많이 신경 썼다. 한국독자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고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되길 원해서다"라고 말했다.
글쓰기에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사연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그는 "저는 굉장히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중학생 때 아버지를 대신해 관청에 편지를 써서 집 앞의 쓰러지려는 나무를 제거한 적이 있다. 그때 글을 쓰면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저는 작가는 세상을 바꾸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차기작은 전세계의 학원 문화를 다룬 '아메리칸 학원'이다. 그는 취재를 위해 한국은 물론이고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캘리포니아 등에서 많은 학원과 관련한 사람과 학생, 부모들을 만났다. 그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학원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은 학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육아의 필수요소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아이들도 또래그룹에서 소외당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부모들이 교육에 대해 걱정하는 건 '교전의 규칙'이 바뀌었기 때문에 어떻게 아이들을 길러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문화와 힘이 전세계로 확산중이다. 그는 "'파친코'가 한국의 20세기를 다루고 있기에 한류에 어느 정도는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영어라는 지배적 언어로 썼기에 가능했다. 한강을 비롯해 영어로 쓰지 않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한국의 위대한 작가들도 많다"고 말했다.
작가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응원의 말도 건넸다. 그는 "작가는 진입장벽이 낮다. 종이와 펜, 도서관의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의 조롱을 견디며 앉아서 버티며 글 쓰는 건 어렵다. 에머스트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작가가 되라고 말하지 않고 소통의 전문가가 되라고 말한다. 너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조언한다.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하지 마라. 더 용감하고 과감해져라라고 조언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다음달에 54살이 된다. 그런데 너무 좋다. 나이가 들수록 더 좋다. 과거에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이제는 아줌마인 것도 좋고 50대인 것도 좋다. 저는 더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데뷔작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도 OTT로 드라마화가 진행 중이다. 그는 "처음에는 넷플릭스와 계약을 했으나 아마도 다른 플랫폼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이 소설은 섹시한 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털어놨다.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중 아시아 증오범죄에 대해 비판하는 기고를 지난 3월 뉴욕타임스에 실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항상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존재했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건 연대하는 것 뿐이다. 사무실에 아시아인이 2명뿐이어도 2명은 함께 해야 한다. 미국 학원에 대한 여러 인터뷰를 진행할 때 한국 아이들은 친구를 만들고 싶지만 부모들이 '친구는 적'이라고 아이들을 갈라놓는 걸 봤다. 정말 해방을 원한다면 언제나 연대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늦깎이 작가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민진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조지 엘리엇을 꼽았다. 그는 "집에 있는걸 좋아한다는 것과 굉장히 뒤늦게 작가로 데뷔했다는 정도를 빼면 공통점은 별로 없는 작가다. 나보다 만배는 똑똑한 작가다. 엘리엇의 '미들마치'는 정말 방대한 규모로 세상의 모든 계급과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담아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삶을 궁금해하는데 모두 경험할 순 없다. 이 모든 걸 담은 이
작가는 강연 직후 세계지식포럼 참석자에게 친필 사인본을 나눠주는 '북 사이닝: 파친코 작가 이민진과의 만남'도 진행했다. 대담 직후 사진을 찍으려는 긴 줄이 늘어섰고, 사인회에는 100여 명 이상이 찾아 세계적 작가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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