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기업인을 옥죄고 혼내는 과도한 '형벌규정'이 우리 사회에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기업 정서에 사로잡혀 기업인을 향해 무차별적 비난과 처벌을 퍼붓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후퇴시키고 경제 활력을 갉아먹는 시대착오적 행태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벌 규정을 개선하라"고 한동훈 법무장관에게 지시한 것은 늦게나마 다행이다.
재계도 이에 맞춰 기업 경영을 제약하는 형벌규정 31건을 포함해 총 121건의 규제개선 필요성을 정부에 건의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된 공정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비롯해 국제노동기구(ILO)관련 노동3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주요 개선대상 법률로 특정해 제안한 것이다
이같은 경제 형벌조항이 기업의 사기를 위축시키고 국내 투자도 약화시킨다는 게 재계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지난달 공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63개국 중 27위로, 전년 대비 4계단 하락했다
특히 기업 효율성 분야는 33위로, 지난해(27위)보다 6단계나 떨어졌다.
재계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가장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는 형벌은 형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죄다.
형법 355조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경우' 5년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특경가법은 배임을 통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50억 미만일 때는 3년 이상 징역,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보통 법정형량이 '3년 이상 징역'이면 집행유예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 사이에선 배임죄가 가장 무서운 형벌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배임죄 요건인 '임무 위배' 범위가 모호하다보니, 수사기관들이 기업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배임죄를 자의적으로 적용하거나 남발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석채 전 KT 회장 등처럼 배임죄로 법정에 섰다가 법원에서 무죄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독일 프랑스 등 해외에선 배임죄에 대한 판단이 엄격하다.
중요한 경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기업 총수들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과잉처벌을 피하고 있다.
물론 기업인이 국익을 해치거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엄벌을 받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을 한다는 이유 만으로 혹독한 처벌잣대를 들이대며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부당한 처사다.
지금처럼 고물가와 고금리, 공급망 혼란 등 경제복합위기가 엄습한 상황에서 민간 활력을 높이고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업의 야성적 충동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과도한 처벌을 대폭 없애 이들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북돋아줘야 한다.
과태료나 과료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굳이 형벌규정에 포함시켜 처벌하는 것은 법치 남용과 다를 바 없다.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형사처벌은 과감히 줄이고, 대신 소액주주와 고객의 손해를 적극적으로 구제하는 민사절차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시민단체, 야당은 "노골적인 유전무죄" "재벌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것"이라며 반발하지만, 기업이 무너지면 수많은 일자리도 사라지고 국가 경제도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지적처럼, '묻지
우리가 하루빨리 소득 5만달러 시대로 가려면, 기업 활동의 자유를 억누르는 '처벌공화국'에서 벗어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부터 만들어야 한다.
기업인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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