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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픽사베이] |
27일 영국의 영화관 체인 '쇼케이스시네마'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영화관은 이달 18~19일 이틀간 '태양을 막아주는 영화' 이벤트를 열고 머리카락이 붉은 고객에게 이틀간, 하루에 한 번 무료 티켓을 제공했다.
쇼케이스시네마는 "전문가들은 영국이 곧 역사상 가장 더운 날을 맞이할 것이며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태양광선에 더 취약하다"라면서 "그들에게 에어컨이 완비된 피난처를 무료로 제공한다"라고 이벤트를 연 이유를 밝혔다.
머리가 붉은 사람이 태양빛에 특히 취약하다는 주장은 얼핏 들으면 영화관 측이 색다른 이벤트를 열기 위해 억지로 만든 이유처럼 들린다. 그런데 사실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
지난 2016년 7월 영국의 유전체 연구소인 '웰컴트러스트생어연구소'가 국제학술지 '네이처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붉은 머리카락,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태양빛으로 인한 피부암에 쉽게 걸린다.
연구팀은 멜라닌생성세포 표면의 '호르몬 수용체 단백질(이하 MC1R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인 MC1R이 원인이라고 전했다.
MC1R 단백질에 특정 호르몬이 달라붙으면 멜라닌생성세포가 흑·갈색 색소인 '멜라닌'을 만들어내는데 MC1R에 돌연변이가 생겨 단백질에 이상이 생기면 멜라닌 생성이 저하되고, 피부나 머리카락에 붉은 끼가 많아진다.
연구팀이 피부암에 걸린 사람 400명의 암세포의 DNA를 분석한 결과 MC1R에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은 암세포 내에서 태양빛에 의해 변이가 일어난 유전자가 평균 42% 많았다.
MC1R이 피부암을 어떻게 유발하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MC1R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피부 세포 속 DNA에 닿는 자외선 양이 많아져 돌연변이가 생길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한 가지 가설이다.
전 세계 인구 중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1~2%에 불과하지만, 영국으로 한정하면 약 8%가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다. 결국 쇼케이스시네마는 자국민을 '과학적으로' 배려한 이벤트를 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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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인구 중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1~2%지만, 영국의 경우 전체의 8%로 많다. 사진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flickr] |
한편 피부암 외에 붉은 머리카락과 다른 현상 사이의 연관성을 밝힌 연구도 있다.
한 예로 영국·네덜란드 공동연구팀은 MC1R에 생기는 돌연변이가 '노안'이 주된 원인 중 하나라는 연구 결과를 2016년 5월 국제학술지 '커런트바이올로지'에 실었다.
연구팀은 2600명이 넘는 영국·네뎔란드 노년층의 유전자와 '눈으로 얼굴을 봤을 때 느껴지는 나이'를 조사했다.
그 결과 주름·피부색 등 노안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요소 중 색소침착과 MC1R 돌연변이가 유의미한 연관이 있고, MC1R 돌연변이가 얼굴을 실제 나이보다 최소 2살 많게 보이도록 한
앞서 2003년 캐나다 맥길대 연구팀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즉 MC1R 돌연변이가 있는 여성은 특정 진통제가 약 25% 더 잘 든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재밌는 점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에게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우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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