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9월부터 적정 소득이 있는데도 보험료를 내지 않는 건강보험 피부양자에게 보험료를 물린다.
대상은 27만 3000명 정도로, 전체 피부양자(1802만3000명)의 1.5% 수준이다.
현행 건강보험 체계는 직장 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직계가족 중 소득과 재산이 일정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에 대해 건보료를 면제하는 피부양 자격을 준다.
그런데 지난달 정부가 건보료 2단계 개편 방안 중 하나로 피부양자 연간 소득기준을 '현재 3400만원 이하에서 2000만원 이하'로 대폭 강화하면서 27만여명이 하루아침에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지역가입자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공적연금을 매달 167만원이상 타는 은퇴자들의 경우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들은 앞으로 월 평균 15만원 가량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다만 정부는 갑작스레 부담이 늘지 않도록 향후 4년간은 보험료를 80%,60%,40%,20%씩 순차적으로 깎아줄 방침이다.
따라서 오는 9월에는 당초 15만원에서 80%를 경감받아 3만원 정도만 내고, 2026년9월부터 제대로 보험료를 내게 된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그동안 노후의 안정적 소득을 위해 반납, 추납(추후 납부), 임의계속가입, 연기연금 등 다양한 연금 수령액 방법을 홍보하면서, 연금액이 167만원보다 늘어난 은퇴자들이 졸지에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됐다는 점이다.
연금공단 본부와 각 지사에는 "연금당국 조언을 따랐다가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게 됐다"는 불만과 항의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한 은퇴자는 "연금수령 시기를 늦춰서 겨우 몇만 원 늘었는데, 피부양자 자격 박탈되고 지역가입자로 되어 연간 300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한다니 이게 무슨 법이냐"고 따졌다고 한다.
건보 재정 안정을 위해 피부양자를 점차 줄이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건보료를 내는 은퇴자들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또다시 소득 기준을 낮춰 은퇴자들에게 건보료 부담을 지우는 것은 땜질처방일 뿐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지금도 은퇴자의 재산 과표(공시가격 60%)가 9억원을 넘거나, 재산과표가 5억4000만원을 넘으면서 연소득 1000만원 이상이면 지역 가입자로 전환돼 건보료를 내야 한다.
과표가 5억4000만원이면 공시가격으로는 9억원, 시세로는 13억 정도다.
KB부동산리브온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2억8000만원이기 때문에 서울의 왠만한 집에 살고 있는 은퇴자들은 모두 해당되는 셈이다.
평생을 땀흘려 일해 겨우 집 한 채 장만하고, 아무런 소득없이 연금으로 그나마 생계를 유지하는 은퇴자들로선 이런 건보료 폭탄에 울화가 치밀 수 밖에 없다.
"건강보험 재정이 최근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악화된 것은 무엇보다 '문재인 케어' 탓이 큰데 책임을 왜 은퇴자들에게만 전가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면서 초음파, MRI(자기공명영상) 등 그동안 환자들이 전액 부담해야 했던 '비급여 의료항목'에 대해 2018년부터 건강보험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병원으로 몰려들었고, 이같은 대형병원 쏠림현상과 의료 쇼핑이 맞물리면서 건보 재정 곳간이 급속히 바닥났다.
2017년까지 7년 연속 흑자였던 건보 재정수지는 2108년 적자로 돌아선 뒤 2020년까지 3년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해마다 보험료를 3%내외로 올리고 국고 지원도 2017년 7조원에서 2020년 9조7000억원으로 늘렸지만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이러다보니 2017년 20조원을 넘던 건강보험 적립금도 이같은 막대한 적자를 메우느라 올해 12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건보 적립금은 내년에 8조원, 2024년 3조2000억원까지 감소한 뒤 고갈될 전망이다.
반면 건보 지출은 지난해 81조원에서 2030년이면 164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해 최근 특별감사를 통해 "MRI 등 건강보험 보장확대 항목에
결국 건보재정 파탄을 막으려면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보장성 항목을 확대해 의료 왜곡을 초래한 '문재인 케어'부터 전면 손질하는 것이 시급하다.
'문재인 케어' 때문에 줄줄 새는 건보료 낭비는 막지 않고, 은퇴자들의 지갑만 털려고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미봉책이나 다름없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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