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피해구제의 첨병 역할을 하는 국무총리 소속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2일 수원시를 상대로 36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 건은 지난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송파구 살인사건'에 대한 정부 판단입니다. 경찰 신변보호 대상자였던 전 여자친구 A씨의 송파구 자택을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A씨 모친을 살해한 이석준이 최근 하급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가운데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흥신소를 통해 이석준에게 A씨 집주소를 알려준 수원시 권선구청 공무원 B씨의 위법행위에 대해 별도 행정 처분을 내린 것이지요.
공무원 B씨는 텔레그램 광고 등을 통해 알게 된 흥신소 관계자들에게 1101건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3954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서울동부지법에서 징역 5년에 벌금 8000만원이 선고됐습니다. 개인정보를 팔어넘긴 공무원 B씨의 일탈 행위가 없었다면 A씨 모친은 이석준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당하는 변을 피했을 것입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제공한 주소지 정보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발생해 결과가 중하다"고 적시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 B씨는 형이 과하다며 최근 항소한 상태입니다.
이석준·공무원 B씨와 별개로 오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결정은 공무원 B씨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권선구청과 수원시를 상대로 부과된 행정처벌입니다.
그런데 매일경제 취재 결과 개인정보보호법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이 끔찍한 사건이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무원 B씨에 대한 권선구청과 수원시의 관리감독 소홀 책임은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 1항(감독 의무 위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법이 28조 1항에 위법행위를 규정하고도 이를 어길 시 따르는 별도 처벌규정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28조 1항(감독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29조(안전조치 의무 위반) 관련 처벌 규정을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감독 의무 위반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어 안전조치 의무 위반 관련 처벌 조항(1회 위반 기준 600만원)을 끌어다 쓴 결정인데요, 위원회는 600만원을 기준으로최종 360만원의 과태료를 이날 결정한 것이지요.
멀쩡한 가족 구성원을 죽음으로 몬 공무원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수원시에 360만원이라는 숫자는 과연 응분의 대가일까요. 독자 여러분은 감독 의무 위반으로 직접 행정처벌을 내리지 못한 이번 위원회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나마 위안이라면 정부 차원의 이 같은 행정벌 결정이 향후 수원시와 권선구청,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한 유족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이날 결정을 통해 지자체와 국토교통부 모두 과실이 있
송파구 살인사건은 대한민국 개인정보보호법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공무원의 일탈이 발생했을 경우 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기관을 상대로 제대로 처벌할 수 없음을 보여줬습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엄중한 책임을 느끼고 신속한 입법 보완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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