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도 아닌데 1,300원대까지 치솟은 환율... 평가잣대 변화 필요성 커져

환율 1,300원대 근접...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미중 등 대외변수에 서학개미까지... 주요 통화에 비해 절하율 낮아
펀더멘탈, 대외평가는 '현상유지'

↑ 달러 정리 중인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직원 / 사진=연합뉴스, 자료출처: 연합뉴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까지 근접하며 환율 레벨의 평가 기준선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금융시장에서 환율 1,300원은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나 경제위기 등 위기상황의 정점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최근처럼 경제위기가 아닌데도 환율이 고공상승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평가 잣대를 동일하게 적용하는데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2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 종가 기준으로 1,272.5원까지 올랐습니다. 29일 1,250원대 중반까지 하락하며 다시 원래 기준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28일 종가는 2020년 3월 19일 (1,285.7원. 종가 기준)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한때 금융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들이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볼 때, 원/달러 환율 1,300원은 그리 쉽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2008년 미국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 이후 단 한 번도 1,300원대가 돌파된 적은 없었습니다. 금융위기의 정점에 서 있던 지난 2009년 3월 6일 한때 원/달러 환율은 1,597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점차 하락하며 안정됐고, 이후 원/달러 환율은 1,050원과 1,200원 사이에서 움직여왔습니다. 한국 경제가 호황일 때는 1,050원 선에서, 비교적 위기를 맞았을 때는 1,200원 선에서 유지돼 왔습니다.


이처럼 고점일 때도 1,200원 선에서 유지되던 원/달러 환율이 1,250원대를 넘어 1,300원대에 육박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었던 2020년 초반 이틀이 전부입니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전염병 사태로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짐에 따라 2020년 3월 19일 (종가 기준 1,285.7원)과 3월 23일 (종가 기준 1,266.5원) 양일간 일시적으로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점차 안정세를 되찾았습니다. 당시 원/달러 환율이 고점을 기록했던 3월 19일 코스피는 1,457.64로 코로나19 위기 저점이었습니다. 나스닥 지수 역시 7,150으로 당시 저점 즈음이었습니다.

현시점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그 당시 수준만큼 원화 가치가 절하돼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원하 가치 절하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원화 가치 하락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속화에 따른 우려와, 중국의 코로나 봉쇄조치에 다른 경기침체 우려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최근 러시아가 디폴트 선언을 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련의 상황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 근접한 현 상황을 한국 경제의 절대적 위기로 해석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높습니다. 최근 원/달러 환율 고점인 4월 28일 기준으로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작년 말 대비 8.1% 강세였습니다. 같은 기간 원화 가치는 6.6% 절하되었으며, 이는 달러화 강세를 고려할 때 비교적 낮은 절하율이었습니다. 달러당 엔화 가치는 같은 기간 11.6% 절하되며, 달러당 엔화 환율은 130엔선을 넘어 2002년 4월 이후 가장 심각한 엔저를 기록했습니다. 유로화와 위안화도 같은 기간 각각 7.6%, 4.3% 절하되었습니다. 주요 통화와 비교했을 때 원화 가치의 절하율 폭이 적었다는 것은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방어를 잘했다는 뜻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한국의 펀더멘탈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나 중국의 코로나 봉쇄 등 대외변수에 따른 전 세계적인 달러 강세 현상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면서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한국에 문제가 있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견해는 감지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국제신용평가기관인 S&P와 무디스는 4월 말 발표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등급 전망을 모두 기존 수준으로 유지했습니다.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업무보고있는 직원들 / 사진=연합뉴스, 자료출처: 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 레벨에 대한 평가 잣대를 바꿔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1,250원 안팎의 환율을 과연 한국 경제의 위기로 받아들여야 하냐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투자보다 해외투자를 선호해 일명 '서학개미'로 불리는 한국의 해외투자 급증 동향 역시 원/달러 환율의 수준을 바꾸는 원인으로 꼽힙니다. 외환당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을 기점으로 서학개미들이 달러 매수 규모가 연간 기준 10배 안팎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9년 이전에 개인의 달러 매수 수요가 한 해에 20억달러 안팎이었다면 최근엔 한 달에 20억달러 안팎으로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올해 들어 나스닥 시장의 하락률이 두드러지면서 이를 저가매수하기 위한 달러 매수 수요 역시 상당히 높은 수준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국제적인 달러 강세나 서학개미 등 여파로 최근 들어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에 상응하는 원/달러 환율 수준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100원 남짓 올라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