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주열 한은 총재가 오는 31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23일 유튜브를 통해 출입기자단과 송별간담회를 가졌다. [사진 제공 = 유튜브 캡처] |
이 총재는 이 자리에서 "누구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법인데, 지난 8년을 뒤돌아보니 역시 참으로 다사다난했다"며 "8년 동안 주재한 금통위 회의를 세어보니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만 총 76회로, 이중 고심 없이 쉽게 이뤄진 결정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회고처럼 그가 2014년 4월 한은 총재로 취임 이후 보름 만에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메르스 사태, 브렉시트, 미·중 무역갈등에다 일본 수출규제, 그리고 코로나19 위기는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다.
이 총재는 불확실성에 따른 정책수행의 어려움이 앞으로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경제환경 변화의 속도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경제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그야말로 불확실성이 상시화되는 세상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 임기를 마치는 시점이지만 몇 가지 정책적 조언을 남겼다.
이 총재는 먼저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금융불균형 위험을 언급했다. 그는 "(이같은) 위험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완화정도를 계속 줄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특히 미 연준이 빠른 속도의 금리인상을 예고했는데 우리가 지난 8월 이후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잠시 금리정책 운용의 여유를 갖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인상이라는 것이 경제주체들에게는 금융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훗날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함은 과거 정책운용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얻은 교훈"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날로 확대되고 있는 중앙은행을 향한 국민의 기대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피력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기본책무인 물가안정이나 금융안정을 지키기 어려운 딜레마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며 "그렇다고 양극화, 불평등, 환경 파괴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어려움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디까지 닿아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끝으로 "떠나는 자리에서 그저 덕담만 나누기에는 우리 경제가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이 너무 큰 것이 사실"이라며 "이를 뒤로 한 채 떠나게 돼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도 덧붙였다.
![]() |
↑ 이주열 한은 총재 재임 기간 기준금리 추이.[자료 제공 = 한국은행] |
취임 당시 연 2.50%였던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0.50%까지 인하했다가 1.25%까지 끌어올린 상황에서 퇴임을 맞게 됐다.
이 총재는 "정책의 출발은 소통"이라고 강조하며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공을 들였다. 통화정책이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일관성·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통화정책방향을 암시하는 중요한 표현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 지난해 5월 "실기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고, 8월 인상 때는 '첫발'이라는 표현으로 추가 인상 의지를 밝혔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점진적'이라는 표현을 '적절히'로 대체하며 기준금리 연속 인상 가능성을 전했다.
이 총재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금통위의 권위 회복도 임기 중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금통위가 거수기가 아닌 치열한 정책 토론의 장이라는 점을 알릴 필요가 있었고, 이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에 2014년 10월 금통위부터 소수의견 존재 여부를 당일에 공개했고, 2016년 2월부터는 소수의견 표명 위원의 실명을 밝혔다. 의결문 기술 방식에서도 경제상황이 전망경로에 부합하는 지를 명시하고 향후 통화정책 기준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했다.
이 총재는 임기 동안 캐나다, 스위스 등 주요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연장하며 외환안전망을 공고히 다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한은은 2017년 11월 캐나다 중앙은행과 만기와 한도를 사전에 정하지 않는 방식의 통화스와프 상설계약을 체결했다. 상호 무기한·무제한 형태의 양자간 통화스와프는 처음이었다.
이어 2018년 2월에는 또다른 기축통화국인 스위스 중앙은행과 106억 달러 규모의 만기 3년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 3월 계약을 연장하면서 만기를 5년으로 확대했다.
이 총재는 2017년 10월 사드 갈등으로 한중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도 세간의 예상을 깨고 중국인민은행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을 이끌어 냈다. 여기에는 국제무대에서 돈독한 관계를 쌓았던 중국인민은행과의 신뢰가 바탕이 됐다.
이같은 외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은 내에서는 직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지난해 말 한은 노조가 노조원 716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서는 차기 총재로 외부 출신을 원한다는 응답이 57.9%를 차지해 절반을 웃돌았다.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