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고액 자산가분들을 중심으로 은행 채권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서울 내 한 증권사 지점에서 일하는 프라이빗뱅커(PB) A씨는 최근 자산 규모 10억원 이상의 큰 손들을 중심으로 은행 신종자본증권 매수 수요가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중 금리는 오르고 있지만 막상 은행에 가면 금리 상승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없다는 게 A씨 설명이다.
실제로 은행 예·적금은 금액 제한이 있는데다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상품 가입이나 이벤트 참가 등 여러 제약조건이 따른다. 반면 신종자본증권은 특별한 조건 없이 예·적금 대비 높은 연 이율 4%를 보장받을 수 있다. A씨는 "위험 자산 외 옵션으로 큰 손들이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판매가 개시된 지 하루 만에 완판된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신종자본증권은 흔히 조건부자본증권, 코코본드로도 불리며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상품이다.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만기가 있더라도 매우 길지만 채권처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최근 금융회사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자본 확충의 방법으로 발행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27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금융사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을 매수하겠다는 수요가 줄을 잇고 있다. 자산 규모 10억원 이상의 고액 자산가들이 올해 삼성증권을 통해 신종자본증권을 매수한 규모는 1593억원으로 전체 거래대금의 84%에 달한다. 자산 규모 1억원 미만 투자자 비중(75억원)의 21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지역별 신종자본증권 매수 비중을 살펴보면 전통적 부촌으로 분류되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비중이 36%로 가장 많았다. 또 신흥 부유촌으로 평가받는 경기 성남(판교)의 비중도 22%에 달했다.
국내 4대 금융지주사들은 올해 들어 잇달아 연 3.9%~4.1%대 이율의 금리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고 있다. 시중 예금 금리보다 이율이 2배 가량 높다. 발행액은 2700~5620억원으로 신용등급은 'AA-(안정적)'의 안정적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내달 NH농협금융지주도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고액 자산가들이 신종자본증권을 대거 사들인 배경으로 금융지주사들의 '펀더멘털(기업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상품은 만약 금융당국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할 경우 원금 상각이나 이자 미지급 조건이 발동할 수도 있지만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발행사인 금융지주사에서 수십조 원의 손실이 분기 단위로 발생해야하기 때문이다.
최근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2030 세대, 특히 30대의 신종자본증권 매수세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단 두 달 만에 매수 규모가 전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20대는 45%, 30대는 560% 늘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고이율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 신종자본증권의 매수 경험이 많은 중·장년층의 경우 절반 이상이 기존에 선호하던 PB와의 상담을 통한 오프라인 가입에서 벗어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을 활용해 매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들어서만 신종자본증권을 2000억원 이상 판매한 삼성증권은 이 같은 추세를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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