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바깥에 롤렉스 `전날런` 줄이 늘어서 있다. [이하린 기자] |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말부터 롤렉스 '성골'이 되기 위해 수차례 백화점 매장에 들렀지만 실패했다. 성골은 롤렉스 정식 매장에서 제값을 주고 시계를 구매한 사람을 말한다. 병행수입을 활용하면 '진골', 중고시장에서 웃돈(피)을 주고 사면 '피골'이라고 표현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 롤렉스 정식 매장은 총 10곳이다. 코로나19 이후 보복소비에 따른 명품 소비 증가로 롤렉스 시계 역시 품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성골이 된 사람을 점점 더 찾기 힘들어지는 이유다.
A씨는 "물건이 많다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을 집중 공략해본 결과 운과 면접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롤렉스 시계를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롤렉스 매장. [이하린 기자] |
A씨는 "제품이 다량으로 전시돼 있는 게 아니라 셀러가 물건을 내어주는 구조이니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차례의 줄서기 끝에 셀러와 상담까진 할 수 있었으나 원하던 모델이 없어 구매에 실패했다.
시계 전문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 등에서는 '롤렉스 면접팁'이 공유되기도 한다. 좋은 시계 차고 가기, 옷 깔끔하게 입고 가기, 예물이라고 어필하기, 셀러에게 정중하게 말하기 등이다. 100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시계를 사기 위해서 장시간 대기는 물론 상담까지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면접 형태의 상담은 되팔이(리셀러)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알려져 있다. 흔히 '유니콘'이라고 불리는 롤렉스 인기 모델은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피(프리미엄)가 붙어 리셀러의 구매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이들이 오픈런을 조장하는 데다 브랜드 가치를 훼손할 수 있어 명품업체들은 고심이 깊다.
다만 소비자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카페 가입자는 "예물시계를 사러 왔다고 하니 셀러가 예식일이 구체적으로 몇월인지 묻고 왼손에 있는 반지도 슬쩍 보더라. 리셀러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 같은데 묘하게 테스트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딱 한 번 오픈런을 해보고 포기했다는 30대 직장인 B씨는 "내 돈 쓰겠다는데 셀러 눈치까지 보며 좋은 모델을 구하려는 게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무척 갖고 싶은 롤렉스 시계가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다시 도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과 무역센터점은 전일 예약제로 바뀌어 오픈런이 아닌 전날런을 해야 한다. 전날 오후 3~4시부터 줄을 서서 저녁 7시 반에 대기표를 받고 다음날 오전부터 순차적으로 입장하는 방식이다. 이 두 지점 바깥에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긴 대기줄이 늘어서 있다.
매장 측은 "한파에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소비자들을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A씨는 "이틀에 걸쳐 기다린 후 상담까지 마쳐도 원하는 모델을 손에 넣긴 쉽지 않다"면서 "얼마나 더 전날런을 해야 롤렉스 시계가 날 선택해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하린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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