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천장 [일러스트레이션 = 유제민] |
22일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올해 파악된 국내 100대 기업 사외이사 숫자는 448명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6명 많아졌다. 올해 조사된 사외이사를 성별로 구분하면 여성의 증가 속도가 최근 1년 새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외이사 448명 중 여성은 6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35명보다 2배정도 많아진 것. 최근 1년 새 100대 기업 내 여성 사외이사 증가율만 보면 91.4%(32명↑)로 '수직상승' 했다.
100대 기업 내 전체 사외이사 중 여성 비율도 지난해에는 7.9%였는데 올해는 15%로 단숨에 10% 벽을 넘어섰다. 이러한 배경에는 다수 기업들이 임기만료 등으로 물러난 사외이사 후임으로 여성을 다수 전진 배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내년 상반기 중에는 100대 기업 내 여성 사외이사 비중이 20%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조사 대상 100대 기업은 상장사 매출(개별 및 별도 재무제표 기준) 기준이고, 사외이사와 관련 현황은 올해 3분기 보고서를 참고해 조사가 이뤄졌다.
이번에 파악된 100대 기업 전체 사외이사 448명 중 119명은 올해 처음으로 사외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119명 중 42명이나 여성으로 채워졌다.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중 35.3%가 여성으로 교체된 셈이다. 새로 뽑는 사외이사 10명 중 3명 이상을 여성으로 영입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 사외이사를 배출한 기업 숫자도 덩달아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100대 기업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한 명 이상 배출한 기업은 30곳이었다. 1년이 지난 올해는 60곳으로 많아지며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 3분기만 해도 100대 기업 중 70곳이 여성 사외이사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이 같이 여성 사외이사 증가에는 내년 8월에 시행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내년 8월부터 자산 2조원 넘는 대기업은 의무적으로 이사회 구성 시 어느 한쪽 성별로만 채우지 못하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상장사가 2600곳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이중 자산 2조원 넘는 곳은 200곳이 되지 않는다. 이사회에 여성을 의무적으로 둬야 하는 곳은 국내 전체 상장사 중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상장사 전반으로 제도 시행을 확산하려면 향후 몇년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100대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 숫자가 가장 많았다. 이 회사의 사외이사 숫자는 총 8명인데 이중 37.5%인 3명이 여성이었다. 이어 삼성전자, 한국전력(한전), S-Oil, 금호석유화학도 여성 사외이사가 각 2명씩 활약 중이다. 이 중에서도 삼성전자와 S-Oil은 사외이사 6명 중 2명(33.3%), 금호석유화학은 7명 중 2명(28.6%), 한전은 8명 중 2명(25%)이 여성 사외이사로 포진됐다.
조사 대상자 중에는 1980년대에 출생한 MZ세대 사외이사도 지난해 2명에서 올해 3명으로 1명 더 늘었다. 한전 방수란 이사는 1987년생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0대 기업 사외이사 중 최연소 자리를 지켰다.
사외이사들의 핵심 경력을 구분해 보면 대학 교수 등 학계 출신이 448명 중 205명으로 45.8%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41.7%보다 4%포인트 정도 높아진 수치다. 이어 CEO 등 재계 출신 89명(19.9%), 국세청·금융감독원원·공정거래위원회·관세청·감사원·지자체 등 관료 출신 80명(17.9%), 판검사·변호사 등 법조계 출신 51명(11.4%) 순으로 조사됐다.
올해 기준 100대 기업 전체 이사회 인원 중 여성 비율은 9.5%였다. 전년 동기 대비 4.3%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국내 100대기업 기업 이사회 중 여성 비율이 10% 정도에 근접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등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국내 여성 이사회 비율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소속된 기업의 전체 이사 중 여성 비율은 올해 처음 30%를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10년 전 미국 상장사의 여성 이사 비율만 해도 16% 수준이었다. 수치로만 보면 아직 우리나라의 여성 이사회 진출 속도는 미국보다 10년 이상 뒤처진 셈이다.
지난해 기준 영국, 프랑스, 독일의 상장기업 이사회 내 여성 이사의 비율도 각각 34.3%, 43.3%, 25.2%로 우리나라 기업보다 높았다. 이 가운데 독일은 이사가 3인 이상인 이사회의 경우 30%를 여성에 할당하도록 의무화 했고, 노르웨이는 임원이 9명 이상인 경우 남녀 비율을 각 40% 이상 채우도록 시행하고 있다. 이슬람이 국교인 말레이시아도 내년부터 상장기업에 최소한 한 명의 여성 이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법을 개정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류영상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