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비맥주, '라온' 상표 사용중단 선언…중소맥주와 분쟁 마무리 수순

↑ 오비맥주가 올해 7월 시중에 선보인 '핸드앤몰트 라온 위트 에일'. [사진 제공 = 오비맥주]

국내 맥주 시장점유율 1위 기업 오비맥주와 한 중소 수제맥주 업체 간 빚어진 상표권 분쟁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라온'이라는 상표를 놓고 빚어진 분쟁인데 오비맥주가 이 상표를 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14일 매경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오비맥주는 자회사 핸드앤몰트의 '라온 위트 에일' 상표 사용을 중단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 맥주는 앞서 국내 중소 수제맥주 업체 코리아에프앤티(에프앤티)가 자사의 '라온맥주'와 상표가 비슷하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던 제품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이날 매경닷컴과 통화에서 "에프앤티가 상표를 출원하기 전에 오비맥주가 먼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세청 신고를 완료해 서로 분쟁의 소지가 있는 상황"이었다며 "이러한 사정임에도 오비맥주는 '라온' 상표를 더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오비맥주는 올해 3월 26일 식약처에 '핸드앤몰트 유미의 위트 에일'을 '핸드앤몰트 라온 위트 에일'로 제품명 변경한다고 신고했다. 이후 엿새 뒤인 4월 1일에는 국세청에 이 맥주의 '주류 상표 사용 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북광주세무서에 신고된 상표 사용 예정일은 올해 4월 5일이었으나, 회사 사정상 제품 제조가 연기돼 실제 사용은 7월 1일부터 이뤄졌다. 문제는 식약처와 국세청 신고 내용이 당사자인 오비맥주와 각 기관(정부)만 알 수 있는 비공개 사안이었다는 점이다.

↑ 중소 수제맥주 업체 코리아에프앤티가 올해 5월 상표를 출원한 '라온맥주'. [사진 제공 = 코리아에프앤티]

비슷한 시기인 5월 18일 중소 수제맥주 업체 에프앤티도 '즐거운'을 뜻하는 '라온'을 붙여 '라온맥주' 상표를 출원했다. 오비맥주의 식약처·국세청 신고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던 에프앤티는 특허청에 상표권 32류(맥주)로 출원을 등록했고, 7월 22일 출원공고를 받았다.
관련 법에 따르면 이때부터 2개월간 이의신청이 없을 시 에프앤티가 '라온맥주' 상표를 등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표출원은 식약처·국세청 신고 건과 달리 공개자료이기 때문에 뒤늦게 파악한 오비맥주가 9월 16일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당초 상표등록 완료 예정일은 9월 21일이었다.
에프앤티로서는 자사가 5월 중순께 상표를 출원하자 오비맥주가 7월부터 비슷한 이름의 제품을 따라 출시한 것처럼 보여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두 기업이 이름 일부가 겹치는 제품을 우연히 시중에 선보이면서 양사가 분쟁을 겪은 것.
에프앤티는 자사 상표가 부당하게 침해당했다며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오비맥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당시 에프앤티는 소장에서 "피고(오비맥주)가 '이의신청'이라는 방법으로 상표등록을 방해하고 있다"고 소송 취지를 설명했다.

↑ 오비맥주가 식약처에 신고한 품목제조보고사항 변경보고서(왼쪽)와 코리아에프앤티의 상표출원공고(오른쪽). [사진 제공 = 오비맥주, 코리아에프앤티]

주류업계에 따르면 식약처 등록과 국세청 신고는 의무사항이나, 상표출원은 선택사항이다. 타 상표와 혼동의 소지가 있거나, 누구라도 쓰고 싶어 할만한 상표에 지식재산권을 보호받고자 하는 자발적 조치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신고 사실을 알 길이 없었던 에프앤티로서는 억울할 만한 상황이지만, 제품 제조 등을 사전에 신고한 오비맥주로서도 난감한 건 매한가지다.
오비맥주 측은 고의로 상표를 도용했다는 에프앤티의 주장과 관련, "시기적인 문제에서 빚어진 오해일 뿐"이라며 "오비맥주가 고의로 도용할 이유가 없으며, 에프앤티의 사실 왜곡이 계속될 경우 정식 대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에프앤티는 오비맥주의 이번 결정과 관련해 "오비맥주가 지금이라도 상표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한 건 다행"이라면서도 "(오비맥주의 이의신청으로) 상표 등록이 내년 하반기까지 지연된 데 대한 피해는 여전히 존재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식약처나 국세청에 신고하는 건 어떤 기업이라도 똑같이 하는 것"이라며 "오비맥주가 상표를 공개적으로 등록하지 않은 건 상표법의 기본적인 취지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덧붙였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