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 임 대표는 식자재 유통 시장을 디지털로 전환해 정보 부족, 부정확한 소통, 상호 불신 등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마켓봄` `식봄` 등 플랫폼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마켓보로] |
"단순히 내가 해보고 싶은 사업을 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절실하게 필요하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사업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당연한 말 같지만 많은 창업자들이 현재 유행하는 분야를 고르거나, 본인 아이디어를 맹신해 창업하거든요. 조금만 사업이 어렵거나 내부에 힘든 일이 생기면, 도전을 중단하거나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피보팅)합니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포기한 횟수만큼 낮아져요. 제가 오랜 기간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고객들이 우리 아니면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는 작은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버텼어요."
연쇄창업가 중에서 단순히 영감이나 우연한 계기에만 의존해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른바 '사업 아이템'은 문제의 본질과 해결 방법에 천착해 치열하게 고민한 산물이어야 한다.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가 지난 2016년 식자재 유통 플랫폼을 만든 뒤 올해 10월 누적거래액 1조원을 돌파한 것도 수차례의 창업에서 깨달은 경험과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마켓보로 창업이 '6번째 창업'이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며 사업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공사장 일부터 공장 생산직, 음식점 주방, 남대문 시장 노점상 등 여러 일로 돈을 모았고, 어머니와 라면 전문 식당을 차렸다"며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내적 성장이 없는 일은 자신에게 성취감을 주지 못한다고 깨달았다"고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다 병역을 마친 뒤 돌아가지 않고 창업가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임 대표는 "병역특례로 정보기술(IT) 회사에서 개발자로 복무한 직후 통신사에서 솔루션 개발 의뢰와 함께 투자 제안을 해 창업에 뛰어들게 됐다"며 "개발보다 사업이 즐거웠고 적성에 맞아,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배수진으로 자퇴했다"고 했다. 임 대표는 음악 서비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록체인 같이 IT 분야에서 사업을 이어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16년 식자재 유통 시장에 뛰어들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중국 알리페이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식당 사장님들의 고민은 그게 아니었어요. 가맹점을 유치하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사장님의 페인포인트(고충)는 뭐냐'고 물으니 '식자재 싸게 파는 데 없어요?'라고 했어요. 식자재를 선택할 수 있고, 싸게 사는 경로를 아는 것. 이게 절실했던 거에요."
임 대표는 "어머니와 식당을 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식자재 유통 과정은 변한 게 전혀 없었다"고 했다. 공급자에 대한 정보 부족(폐쇄적 구조), 상품에 대한 정보 부족, 상호 불신의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70만개 식당에 대기업의 식자재 유통 비중은 25%도 안 된다. 나머지는 수많은 중소유통사가 맡고 있는데, 식당에서 다양한 업체 정보를 알기 어렵다"며 "여전히 전화로 주문하고, 종이 명세서를 쓰다보니 오주문, 오배송 문제가 고착화됐고 여기서 오는 상호불신이 팽배했다"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식자재 유통 시장을 디지털로 전환해야만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랫폼으로 식당과 식자재 유통업체의 빠르고 투명한 소통을 돕고, 정보의 비대칭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간거래(B2B) 식자재 유통 서비스 '마켓봄'은 그 결과물이다.
마켓봄은 식당과 식자재 유통사를 잇는 클라우드 서비스(SaaS)다. 식당 점주는 PC나 앱으로 접속해 클릭 몇 번이면 필요한 식자재를 주문할 수 있다. 상품도 자주 사는 순으로 정렬된다.
종이 명세서와 달리 기록이 정확히 남아 부정확한 소통이 사라지고, 바쁜 식당 업무 중에도 빼먹지 않고 식자재를 주문할 수 있다. 유통사 입장에서도 영업사원이 식당 점주에게 전화해 주문 받고, 정리하고, 물류팀에 연결하는 과정이 모두 자동화돼 오주문 문제 해결뿐 아니라 업무 전반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임 대표는 "아무리 혁신적인 서비스라도 처음엔 관성 때문에 기존 방식이 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프랜차이즈 기업부터 전국 공급자를 일일이 수소문해 만나러 다녔다"고 했다. 성장세를 타기까지 '우리 아니면 혁신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사명감이 큰 도움이 됐다. 마켓봄 누적 거래액은 2016년 출시 뒤 2018년 10월 1000억원, 2년 뒤인 지난해 11월 5000억원, 11개월 뒤인 올해 10월 1조원을 넘어서며 'J커브'를 그리고 있다.
마켓봄이 정확하고 투명한 소통을 돕는 데 주력하는 서비스라면, 식자재 거래 전문 플랫폼인 '식봄'은 식당과 유통사 간의 정보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다. 임 대표는 "식당은 식자재 업체를 바꾸고 싶어도 정보가 없다. 그래서 구매자들이 다른 식자재 업체를 선택할 수 있고 바로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마켓을 만들게 됐다"며 "식당은 합리적인 가격에 빠르고 믿을 수 있는 유통업체를 찾을 수 있고, 유통사는 온라인으로 고객을 만나 추가 성장의 기회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두 플랫폼을 통해 수집되는 '식자재 유통 데이터'를 활용해 불필요한 유통 단계를 없애고, 검색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최적화된 추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 마켓보로는 B2B 유통 빅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고, 거래 규모에 적합한 인공지능(AI) 기반 매입 최적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단순히 최저가를 찾아주는 게 아니라 구입 규모나 거리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가장 적합한 거래 상대를 알려주는 것이 목표다. 임 대표는 "마켓보로는 누구도 구하기 어려운 식자재 거래 데이터를 누구보다 빠르게 수집하는 기업"이라며 "이 데이터에 AI 기술을 접목해 식당뿐 아니라 식자재 도매업체까지 모두가 최적화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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