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게임을 토대로 만들어질 것이다."
메타버스를 뭐라고 정의할지,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에 빠진 기업이 많은 가운데, 미국 컨설팅회사 액티베이트(Activate)는 내년 테크·미디어 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메타버스의 출발점은 게임"이라고 똑 부러지는 대답을 내놨습니다.
이 회사의 마이크 울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개최한 '테크 라이브' 행사에서도 "메타버스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게임에 있다. 메타버스를 하려는 기업은 가장 먼저 게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게임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바뀔 것"이란 예측도 내놨는데, 맞을까요. 찬찬히 따져봤습니다.
↑ 나이키가 미국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 구축한 가상세계 `나이키랜드`의 모습. 아바타들이 술래잡기, 피구 등 다양한 게임을 즐기거나 만들면서 나이키랜드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진 출처 = 로블록스 캡처] |
아바타가 활동하는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에 다양한 캐릭터를 구현한 게임과 매우 비슷합니다. 실제 게임은 메타버스 핵심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데요. 우선 대규모 사용자입니다. 인기 게임은 전세계 수백·수천만명의 사용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예컨대 작년 3월 닌텐도가 출시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지금까지 전세계 3400만 장 이상 팔렸습니다. 이 게임에 대해 충성도가 높은 사용자가 3400만 명이 넘는 셈입니다. 미국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 접속하는 일일 평균 사용자 수는 9월말 기준 4730만 명에 달합니다. 국내 게임사 위메이드가 개발한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여러 명이 대결을 펼치는 게임) 미르4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돈 버는 게임(P2E·Play to Earn)'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지난달 전세계 동시접속자 수가 13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습니다. 게임이지만 현실 세계처럼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는 의미입니다.
게임 속에서 게임 플레이와 거리가 좀 있는 '과외 활동'도 발생합니다. 캐릭터에 장착할 아이템을 게임 재화로 구매하거나 다른 사용자들과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일면식 없는 사용자와 채팅을 하거나 길드처럼 같은 팀을 꾸리기도 하죠. 콘서트·대회 등 각종 이벤트에도 참가합니다. 액티베이트는 "18세 이상 미국 국민의 59%가 게임 사용자이며 이들 중 60%는 게임 속에서 친구 맺기, 온라인 행사 참가 등 메타버스와 같은 '비(非)게임 활동'을 경험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게임엔 메타버스 구현 기술이 녹아있습니다. 게임 캐릭터와 가상세계를 개발하고 운영·관리하려면 스트리밍,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 정보기술(IT)을 총동원하고, 개인정보 보호 등 보안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임사들이 "메타버스 원조는 게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마이크 울프 CEO는 "검색·소셜 네트워킹, 쇼핑, 뱅킹 등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활동이 게임에서 벌어지게 될 것"이라며 "대작 또는 인기 게임이 메타버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메타(옛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는 게임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로 가는 지름길이 게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해외 빅테크의 게임 사업 경쟁력은 어느 수준일까요. 액티베이트에 따르면 해외 빅테크의 게임 사업의 경쟁력은 크게 8가지로 평가해볼 수 있습니다.
1)퍼블리싱: 신작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
2)가상세계: 가상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도구와 인프라스트럭처
3)콘솔 기기: 게임을 PC·TV, 모바일 등에서 즐길 수 있는 디바이스
4)AR(증강현실)·VR(가상현실)기기: 가상·증강현실에 들어갈 수 있는 디바이스
5)클라우드: 게임을 장소·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끊김없이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
6)앱 스토어: 게임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는 마켓
7)구독 서비스: 정액제 등 사용자가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업 모델
8)영상 플랫폼: 게임을 미디어 콘텐츠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총 8개 항목에서 7개를 충족하고 있습니다. MS는 올해 콘솔 '엑스박스(Xbox)' 출시 20주년을 맞았는데요. 우선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고, 가상세계로는 마인크래프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콘솔에선 '엑스박스'로 전세계 콘설시장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양분 중이며, 홀로렌즈와 같은 AR·VR를 합쳐놓은 MR(혼합현실) 디바이스를 상용화했습니다. MS는 아마존웹서비스, 구글과 더불어 글로벌 빅3 클라우드 사업자입니다. MS 스토어를 운영 중이며, 엑스박스 게임패스 등 다양한 구독 모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없는 것은 게임 영상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메타(페북)는 5개 요소를 갖췄습니다. VR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온라인 행사에서 "VR게임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혔을 정도인데요. 메타는 2019년부터 VR게임 회사의 제휴와 인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VR게임 '비트 세이버(Beat Saber)'를 개발한 '비트 게임즈(Beat Games)'를 비롯해 미국 VR게임 개발사 '레디 앳 던(Ready at Dawn)', '산자루 게임즈(Sanzaru Games)' 등을 품었습니다. 가상세계는 '호라이즌'을 개발하고 있고, AR·VR디바이스는 오큘러스가 있습니다. 메타는 페이스북을 통해 게임 스트리밍과 영상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서핑` 가상현실(VR)게임을 즐기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아바타. [캡처=페이스북] |
의외의 강자가 아마존입니다. 아마존은 지난 9월 '뉴월드'란 온라인 게임을 출시해 빅테크들을 긴장시켰는데요. 게임 시장에선 후발주자이지만 게임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고(퍼블리싱), 루나(클라우드), 아마존 앱스토어(앱스토어), 아마존 프라임 게이밍(구독 서비스), 트위치(영상 플랫폼) 등 5개 요소를 갖췄습니다. 넷플릭스도 '나이트 스쿨(night school) 스튜디오'를 인수하며 게임 시장에 뛰어든 상황입니다.
↑ 글로벌 빅테크의 게임 사업 경쟁력 현황. [자료=미국 컨설팅업체 액티베이트의 `테크 미디어 산업 전망 보고서 2022` 일부 캡처] |
적어도 지금의 메타버스 흥행에서도 게임의 역할이 상당히 큽니다. 블록체인과 NFT(대체불가토큰)가 메타버스에 탑재돼 다양한 경제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기 전까지 사용자를 가상세계에 묶어두려면 '재미'를 줘야하는데, 게임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공식 맵(가상세계) 중에서 '점프 마스터'가 압도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점프 마스터는 여러 명의 아바타들이 점프로 장애물을 뛰어 넘으며 타워를 탈출하는 게임인데 누적 방문자 횟수가 1억4700만 번으로, 다른 대표 공식 맵 '한강 공원(2800만 번)'보다 5배 이상 많습니다.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의 일일 평균 방문자 수가 제페토(약 2000만명)보다 2배 이상 많은 것도 게임의 힘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나이키는 로블록스에 '나이키 랜드'를 구축했는데, 아바타들이 술래잡기, 피구 등을 즐길 수 있고 간단한 게임도 제작할 수 있습니다. Z세대뿐 아니라 보다 젊은 알파세대는 현재 메타버스를 '게임'으로 인식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공식 맵(가상세계) `점프 마스터`에서 아바타들이 점프 대결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게임의 가장 기초 기능인 점프가 적용된 맵은 아바타들로 늘 붐빈다. [캡처=제페토] |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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