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객원교수 |
한국에서는 대부분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는 상품시장규제지수가 상위 5위에 해당한다. 그만큼 시장규제가 많다는 뜻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20년간 한국은 요지부동의 5위다. 20년 동안 시장규제라는 측면에서 전혀 개선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와는 거꾸로 정부가 시장에 적절히 개입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한 산업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공유 전동킥보드 산업이다.
현재 서울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전동킥보드는 5만 5천대에 달한다. 이는 프랑스 파리의 1만 5천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3만대, 이탈리아 로마의 1만 6천대에 비해 매우 많은 숫자이다.
물론 전동킥보드의 숫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각 도시의 대중교통여건과 도로사정, 인구 수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해야만 상호비교가 가능한 일이다.
전동킥보드 시장이 혼란스럽다는 점은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다 인식한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듯 방치돼 있는 전동킥보드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민원이 거세지자 서울시에서는 민간용역업체를 동원해서 방치된 전동킥보드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용을 공유전동킥보드 업체에 물리고 있다. 1주일 만에 한 업체에 청구된 비용만 3~4천만 원 가까이에 달한다.
문제는 이러한 비용을 부담할 주체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정하지 않고 시행하는 데 있다. 전동킥보드를 지정된 위치에 주차시킬 책임이 이를 이용하는 시민에 있는가 아니면 전동킥보드를 대여해 준 업체에 있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킥보드를 이용한 사람이 지정된 위치에 이를 갖다 놓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보니, 그리고 14개 이상의 업체가 경쟁하는 시장 상황에서 부과된 수거비용을 이용자에게 전가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시장에서의 규율을 누가 확보하는 가하는 이슈로 귀착된다. 그리고 그 규율이 합리적인가도 따져 보아야 할 문제다.
예컨대 법규에서 정하는 전동킥보드 주차지역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지하철역 주변과 버스 택시 정류장에서 10미터 이내에는 주차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과연 이 규정이 합리적인가? 전동킥보드가 버스 지하철 등 주류 대중교통수단으로 접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 데, 여기서 1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주차해야 한다니 이용자들이 지키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10미터가 넘어서는 지점에 다수의 전통킥보드를 주차할 수 있는 구역이 표시돼 있는 경우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많은 신사업 분야에서 시장진입을 가로막는 규제의 장막을 세운 것과 비교하면 전동킥보드산업의 경우는 특혜를 받은 업종일 수 있다. 이미 불법화된 타다의 경우를 보면 명확해진다. 타다의 경우 기존 택시업체들과의 이해관계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공유 전동킥보드의 경우에는 기존에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이해관계자 집단이 없었다. 그러니 정부는 최소한의 안전과 도로상의 주행규칙을 정하고 전동킥보드 사업을 허용했다. 허가요건도 복잡할 것 없이 등록만으로 사업이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을 외국과 비교할 때 선진국과 비교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잘못 아는 게 하나 있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 된지 오래라는 사실이다. 세계 11대 경제대국인데 선진국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부자클럽이라고 하는 (이제는 그 의미가 퇴색되긴 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게 언제 적 일인가? 한국은 이미 선진국인데, 행정이 선진화돼 있지 않은 것뿐이다.
한국의 현재 전동킥보드 문제는 이미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국가가 겪은 일이다. 프랑스도 전동킥보드가 한 때 2만대 이상으로 난립해 파리시장이 전동킥보드가 무정부 상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는 선진행정은 무엇인가. 역시 파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파리는 전동킥보드를 적정 숫자에서 관리하고 업체의 책임과 권리를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전동킥보드 사업을 실질적으로 허가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정부가 전동킥보드 사업의 요건을 정해서 업체를 상대로 입찰에 붙인 것이다. 입찰에는 사용자의 안전과 관리, 유지, 충전, 환경에 대한 의무를 적시했다. 이렇게 해서 혼란한 상황을 정리했다.
물론 파리와 같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시장 참여자들 간의 경쟁을 보장하면서도 적정한 관리메커니즘을 도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공유전동킥보드 같은 사태는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정부가 현재의 시장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동킥보드 산업에서 시장의 경쟁과 규율 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는가 하는 것은 향후 정부의 규제완화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벤치
[강영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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