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증가율 5~6%대 관리하는 '중립적 재정' 필요
↑ 사진 = 기획재정부 블로그 캡처 |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도 나랏빚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집니다.
늘어나는 국가부채 고삐를 잡기 위한 안전장치인 재정준칙은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된 뒤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대선을 앞두고 각종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냅니다.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국가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로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지출 증가 흐름이라면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국가채무비율은 20%대가 7년(2004~2010년), 30%대는 9년(2011~2019년) 유지됐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40% 선을 넘어 43.9%가 되더니 올해는 47.3%로 높아졌습니다. 내년에는 50.2%로 50% 선을 돌파합니다.
정부가 최근 내년 예산안과 함께 내놓은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은 내년 50%를 넘은 뒤 2023년 53.1%, 2023년 56.1%, 2025년 58.8%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국가채무는 올해 956조 원(본예산 기준)에서 내년에는 1,068조 3,000억 원, 2023년 1,175조 4,000억 원, 2024년 1,291조 5,000억 원, 2025년에는 1, 408조 5,000억 원으로 거침없이 불어납니다.
이는 연평균 지출증가율을 5.5%로 상정한 결과입니다. 정부는 2023년 이후부터는 경제회복 추이에 맞춰 총지출 증가율을 점진적으로 하향 조정해 2025년에는 경상성장률 수준으로 조정하는 등 재정 총량을 관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는 현 정부 생각일 뿐, 차기 정부가 이를 지킬 가능성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심각한 위기 상황도 아닌 내년 예산 증가율을 8%대로 잡아놓고 차기 정부에 5%대로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 지켜지겠느냐"면서 "사실상 내년 1분기에 임기가 종료되는 정부라면 중립적 재정을 짜는 게 맞다"고 했습니다.
한 전직 예산 관료는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재정 확대 요인 때문에 국가채무비율을 낮은 수준에서 관리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젠 재정 고삐가 완전히 풀려버렸다"면서 "지출 증가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전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작년 12월 말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담긴 '한국형 재정준칙'은 오는 2025년부터 국가채무비율을 매년 GDP 대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는 GDP 대비 -3% 이내로 통제한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년부터 예산 증가율을 5~6%대에서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 본예산(558조 원)보다 8.3%(46조 4,000억 원) 늘어난 604조 4,000억 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은 한 번 늘려 패턴화해놓으면 줄이기가 무척 어렵다"면서 "큰 위기가 지나고 경제가 정상화로 가고 있는 흐름을 감안해 내년에는 정부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런 작업이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2025년까지는 채무비율이 60% 내에서 관리될 것으로 보지만,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지출을 늘리면 국가부채 증가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차기 정부라고 해서 추경을 하지 않겠느냐"면서 "과거 사례를 보면 정권이 같은 당으로 넘어가든 다른 당으로 넘어가든 이전 정권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는 사례는 거의 없는 만큼 내년에도 추경이 큰 규모로 편성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7월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수준(AA-)으로 유지하면서 한국의 건전한 재정 관리 이력은 국가채무 증가 압력을 완화하는 요인이며, 재정준칙은 재정 관리를 더욱 강화할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고령화에 따른 지출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국가채무 증가는 재정운용상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작년 12월 말 국회에 제출된 재정준칙은 강제성이 없어 선언적 의미가 강합니다. 국가 위기 발생 때는 준칙 적용을 면제할 수 있도록 했고, 경기 둔화 시에는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준칙 적용 시기는 코로나 위기 등을 고려해 2025년으로 멀찍이 미뤘습니다.
실효성이 의심스럽지만 여야 정치권은 이를 살피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많지만, 정권을 잡으면 예산 운용의 족쇄가 되기 때문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재정준칙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7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수준(AA-)으로 유지하면서 재정과 관련해 "고령화에 따른 지출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국가채무 증가는 재정운용상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재정준칙은 재정 관리를 더욱 강화할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동현 교수는 "정치권이 재정준칙을 외면하고 있는데 이는 여당만이 아닌 야당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쪽지 예산을 주고받으며 지역구 예산 증액에 골몰할 게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코로나 위기가 지속한 작년과 올해 정부 재정 대응을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경기 회복기에 재정 기조의 정상화가 지체된다면 향후 긴급한 재정 수요가 발생했을 때 대응 여력이 약해진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고령화와 산업구조 변화 등 구조적 요인으로 재정지출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연합뉴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