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와 맺은 주식매매계약에 따른 대금 지급 시한이 도래했지만 이를 이행하려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홍 회장은 늦어도 9월 1일까지는 남양유업을 통해 입장문을 밝힐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은 법률 자문사인 법무법인 LBK앤파트너스와 최종 입장문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해당 입장문에는 지분 인수예정자인 사모투자펀드 한앤컴퍼니(이하 한앤코)에 대한 요구 사항들이 담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양측의 입장이 원만히 조율되고 있지 않은데다 법정 공방까지 예고된 상황인 만큼,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사실상 지분 매각 자체를 철회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계약의 쟁점은 무엇이며, 홍 회장은 실제 매각 철회가 가능할까.
홍 회장이 한앤코에 매각하기로 한 지분(53.08%)의 가격은 총 3107억원이다. 남양유업이 보유한 유형자산의 순장부가액인 3693억원에도 미치지 못해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파킹 거래' 의혹을 제기할 정도였는데, 당시 한앤코는 이를 전면 부인한 바 있다.
특히 갑자기 오른 주가가 문제가 됐다. 홍 회장이 한앤코와 지분매매계약(SPA)을 체결하던 5월12일의 주가는 주당 36만원 선이었으나, 지분 매각 발표 후 폭등해 70만원에 이르렀다. 7월1일에는 81만3000원을 찍었는데, 이 가격은 한앤컴퍼니가 사기로 한 주당 가격과 유사한 수준이다. 계약 체결 당시만 해도 헐값 매각이라 판단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주가가 급등하면서부터는 홍 회장으로서는 '너무 싸게 팔았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가에 프리미엄을 받고 파는 것이었는데 프리미엄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지인들 역시 매각가에 대한 이견을 피력하며 홍 회장의 심경에 변화를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는 홍 회장이 요구하는 것이 '이면 계약'의 사전 실행이라고 본다. 홍 회장과 한앤코가 주식매매계약(SPA)와 별도로 작성한 이면 계약서가 존재하며, 홍 회장이 이면 계약의 사전 이행을 한앤코에 계약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이면 계약에는 일가족의 남양유업 내 지위 보장 및 사업 분할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아들의 직위 유지가 그 핵심인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 4월 보직 해임된 홍 회장의 장남 홍진석 씨는 지난 5월 전략기획 담당 상무로 복직했고, 차남 홍범석 상무도 미등기 임원으로 승진해 출근하고 있다. 이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혹은 경영진으로 선임해달라는 요구일 것이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남양유업의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백미당(百味堂)'의 분할이다. 홍 회장 일가는 회사를 매각하더라도 백미당 브랜드만큼은 계속 가져가길 원하며, 거래 종결에 앞서 한앤코가 사업부 분할에 동의해 이를 선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만일 홍 회장이 진정 매각 의사를 철회하려 한다면 SPA에 적힌 계약 해지 사유가 분쟁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앤코는 '남양유업은 계약해제권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 변심 가능성이 높은 딜이라는 판단을 한 한앤코가 SPA에 계약 해지 사유를 설정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SPA 상 계약 해제권이 없다고 해도, 이것이 양자 간의 '사적 계약'인 이상 일방이 계약을 절대 이행하지 못한다고 하면 파기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SPA 체결 이후 딜이 깨지는 경우는 흔치는 않지만 더러 있는 일이다.
또 한앤코가 계약 청구 이행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일종의 압박 수단이긴 하나, 이것이 홍 회장으로 하여금 반드시 매각을 진행하도록 하게 만드는 강제 수단은 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소송을 통해 최종 결과를 얻기까지는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그 결과 또한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펀드마다 투자 기한을 갖고 있는 PEF 특성상 한 건의 투자에 필요 이상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도 비효율적 의사결정일 수 있다.
더불어 우선 기업을 상대로 한앤컴퍼니가 강력하게 물고 늘어지면 그 자체가 이 펀드의 차후 영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앞으로의 바이아웃 투자에서 오너 들을 상대할 때 상당한 부담을 안고 가게 된다. 평판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지분 매각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경영권을 포기하고 사퇴한다던 홍 회장은 회사로 거의 매일 출근하고 있고, 부인인 이운경 남양유업 고문도 전무 직급 상근직으로 근무중이다. 회사에 대 한 애착을 아직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남양유업 반기보고서에도 홍 회장의 직함과 상근 여부는 여전히 회장, 상근으로 기재돼 있다. 또 홍 회장은 올해 상반기 보수로 8억800만원을 수령했다.
만약 딜을 깬다면, 홍 회장은 어떤 페널티를 받게 될까.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전체 거래대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지급하며, 매도인의 단순 변심에 따른 계약 해지시에는 계약금 몰취 혹은 계약금의 두 배를 페널티로 설정한다. 홍 회장은 한앤코로부터 계약금 약 310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만약 계약을 파기
하지만 계약 해지 사유가 설정하지 않았으면, 계약 해지시 홍 회장이 짊어져야 할 페널티 또한 SPA에 명시되지 않았을 수 있다. 결국 그마저도 하지 않는 선에서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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