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역대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면세점들이 생존을 위해 '적과의 동침'까지도 불사하며 줄어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체 온라인채널에서만 재고 면세품을 선보이던 전략을 포기하고 외부 온라인몰에 입점하거나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급부상한 중국 면세점과 손잡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세계적인 바잉파워를 바탕으로 해외 유명 브랜드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25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면세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면세업계 최초로 이탈리아 '발렌티노 뷰티'를 한국 시장에 내놨다. 25일 온라인에서 발렌티노 뷰티의 '고 클러치' 판매를 시작으로 다음달 2일에는 명동점 공식 매장을 개점할 예정이다. 매장에서는 메이크업 제품과 향수 등 발렌티노 뷰티의 100여가지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국에 발렌티노 뷰티 매장이 문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세계면세점은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만큼 젊은 고객층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 상품 유치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면세점은 상품 매입력을 해외 물류망과 결합해 업계 최초로 해외상품 직접구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6월 개점한 '엘디에프 바이(LDF BUY)'에서는 롯데면세점 호주법인에서 매입한 현지 상품을 한국 고객에게 판매하고 있다. 닥터내추럴, 스프링리프 등 호주 유명 건강식품 브랜드의 200여 개 상품이 대상이다. 롯데면세점 호주법인이 현지 상품 매입부터 플랫폼 운영, 제품 판매, 한국 소비자 대상 직배송 서비스 등을 맡는다.
롯데면세점은 해외 직구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품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것에 착안해 이번 사업을 전개했다. 현지 법인에서 직접 매입해 상품 품질을 보장하고 문제 발생시에도 사후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신뢰를 기반으로 직매입 상품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등 롯데면세점이 운영중인 국가로 상품 매입 지역을 확대하고 건강기능식품을 비롯해 상품군을 화장품, 패션, 시계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해외 관광객이 면세점 주요 고객이라는 점에서 외국인도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도 선보일 예정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콘텐츠로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것도 주목된다. 롯데면세점은 최근 증강현실(AR)을 활용한 선글라스 가상 착용 서비스와 가상현실(VR)로 구현한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였다.
신라면세점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외부 유통업체와 제휴하는 전략으로 펴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최근 국내 고객 대상으로 재고 면세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쿠팡과 손잡았다. 그동안 신라면세점은 자체 여행중개 온라인플랫폼인 '신라트립'에서만 재고 면세품을 선보였지만, 보다 더 많은 고객에게 제품을 선보이려면 외부 채널과 제휴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국내 대표 이커머스인 쿠팡의 오픈마켓 서비스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100여개 브랜드의 제품 2000여종을 내놓은 것이다.
선보이는 제품은 발리, 투미, 샘소나이트, 만다리나 덕, 판도라, 프레드릭 콘스탄트를 비롯해 명품 패션, 시계, 잡화, 전자제품 브랜드의 인기 상품들이다. 상품은 수입통관 절차를 거쳐서 고객에게 바로 배송된다.
지난달에는 국내 면세점 업계 최고의 적으로 급부상한 중국 면세점과 손을 잡는 의외의 행보까지 보였다. 중국의 면세특구인 하이난성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중국 하이난성 하이요우면세점(海南旅投免稅品有限公司, HTDF)과 양국 면세점 운영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이다.
신라면세점은 하이난에서 영업하는 현지 면세점과의 협약을 통해 향후 합작사를 설립하고 상품 소싱, 시장 개발, 인적자원 교류, 상품 공동개발 등 운영 전반에 대해 상호 협력할 예정이다. 지난해 글로벌 면세점 순위에서 1위를 꿰찬 중국국영면세품그룹(CDFG)을 배출할 정도로 세계 최대 면세시장으로 급부상한 하이난에 현지 업체와의 제휴를 활용해 간접적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특히 신라면세점은 기존의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확보한 주요 브랜드 제품을 상대적으로 상품 구색이 약한 HTDF에 공급하면서 이와 관련한 수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화장품 등 일부 제품의 경우 신라면세점이 전세계 최대 면세사업자라 저렴하게 제품을 조달할 수 있는 만큼 일종의 중간상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이번 MOU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 특히 하이난 진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면세점들의 움직임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이 스며들어 있다. 실제 국내 면세점 시장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면세점 매출은 1조3479억원으로 직전인 5월보다 14% 줄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달 1조9571억원과 비교하면 31%나 낮은 것이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이지만 그나마 올해 3월부터 5월까지는 상승세를 이어왔다. 개인관광객 수요는 끊겼지만 다이궁(중국 보따리상)의 발길은 계속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커진 코로나 확산세 탓에 네달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면세점들이 해외 업체와의 제휴 등을 통해 다이궁 의존도를 낮추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국내 면세점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95%인데, 이중 대부분이 다이궁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업계는 다음
[김태성 기자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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