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부부는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이다.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한다. 두 사람은 개발도상국에서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선진국은 달리 본다.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최저 생활비를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은 위기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한국도 두 사람 눈에는 분명히 선진국이다. )
그들은 책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생각의힘, 김승진 옮김)'에서 선진국에서 기본소득 도입이 힘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우선 감당 불가능한 수준의 돈이 들어간다는 게 문제다.
두 사람은 책에서 미국의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매달 모든 미국인에게 1000달러를 주려면 연간 3.9조 달러가 필요하다. 이것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복지 프로그램을 다 합한 것보다 1.3조 달러나 많은 것이고, 연방 정부 예산 전체, 그리고 미국 경제 규모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국방, 공공 교육 등 전통적인 정부 기능을 줄이지 않으면서 이만한 자금을 조달하려면 기존의 모든 복지 프로그램을 없애고 추가로 미국의 세금을 덴마크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기본소득 공약을 내세운 이재명 경기지사가 장기 목표로 설정한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5167만 명의 국민에게 지급하려면 310조 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국세 수입 285조 6426억 원의 1.09배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국방과 교육, 사회보장 지출을 없애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한국 현실에서 기본 소득은 실현 불가능한 '기본 불가능 소득'이다.
그런데도 굳이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어떻게 될까.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보장 지출을 폐지해야 하고 공교육 투자도 거의 못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낀 돈으로 대한민국 최극빈자와 최고 갑부에까지 똑같이 50만 원씩 돈을 나눠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는 결국 가난한 사람의 돈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나눠주는 꼴이 될 것이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과 양극화만 심화될 것이다. 결국 기본소득은 '기본 불평등 소득'이 되고 말 것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진보 인사들은 부디 상당수의 보수 경제학자들이 왜 기본소득에 찬성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첫째, 기본소득은 극단적으로 '작은 정부'를 낳을 수 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나면 정부가 쓸 돈이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둘째, 기본소득은 시장 기능의 맹목적인 강화를 뜻한다. 부자든 빈자든 구별 않고 월 50만 원씩 전 국민에게 나눠주고는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게 기본소득이다. 50만 원을 종잣돈으로 시장에서 알아서 생존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부의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의 확산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기에 기본소득 도입이 필수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삶에서 '일'이 가진 의미를 망각한 주장이다. 인간은 일을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일은 단순히 생존의 수단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을 통해 자존감을 지키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본소득이 '일자리 대신 월 몇십만 원의 돈을 받고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라'는 뜻이라면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기본소득에 들어가는 엄청난 예산을 감안할 때, 이는 기본소득 시행의 필연적 귀결이 될 것이다.
배너지·뒤플로 부부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겼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얻었던 자존감을 상실한 것이 부유한 나라가 처한 위기의 진정한 속성이라는 우리의 주장이 옳다면, 보편 기본소득은 여기에 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일자리라는 뜻이다. 일이 있어야 인간은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기본소득에 엄청난 돈을 쓸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이재명 경기 지사는 20대 청년에게는 연 200만 원, 그와의 모든 국민에게는 연 100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본소득이 아니라 용돈 수준의 돈이다. 그러나 이 돈을 지급하는 데에도 해도 58조 42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청년에게는 13조 5000억 원, 그 외 국민에게는 44조 9200억 원이 소요된다.
이 지사는 땅 가진 이들에게는 보유세를, 기업에는 탄소세를 부과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보유세는 그 땅 위에 들어설 주택과 사무실 공장 가격을 높이고, 그 공급을 줄일 곳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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