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5월 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정부는 물론 지자체들까지 다양한 금연 캠페인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금연 캠페인들이 이미 흡연을 하고 있는 흡연자 중심의 캠페인인 반면, 최근 흡연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고자 하는 법안도 발의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캡슐담배의 제조 및 수입판매를 금지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31일 대표 발의했다.'캡슐담배'는 가향담배의 일종으로 필터에 향 성분을 포함한 캡슐을 가지고 있어, 흡연자가 원하는 순간 캡슐을 터뜨려 향을 맛볼 수 있는 담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과일향, 커피향 등 3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캡슐담배가 판매되고 있으며, 특히 10년간 판매량이 16배 증가하였을 정도로 청소년과 여성을 포함한 젊은 층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이러한 캡슐담배 제품이 청소년과 여성이 흡연을 시작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이번 김예지 의원의 법안 발의가 주목을 끈다.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에서 흡연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캡슐담배가 여성, 청소년 흡연에 미치는 영향 분석하고, 그 이면에 간과된 캡슐담배의 위해성과 시급한 규제 방안을 정리해본다.
캡슐담배로 흡연 시작한 청소년 중 89.6%가 흡연 시작에 캡슐담배가 영향
캡슐담배 등 향이 첨가된 가향담배는 여성과 청소년들에게 더 많이 애용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만 13∼39세 흡연자 9063명 중 65%는 가향담배를 사용했고, 흡연자 중 여성(73.1%)이 남성(58.3%)보다 가향담배 사용률이 높았다. 연령별로 남성은 청소년 때인 13∼18세(68.3%), 여성은 19∼24세(82.7%)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다. 이는 흡연 초기 단계에서 여성과 청소년 집단이 가향담배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캡슐담배는 청소년들이 흡연을 시작하는 주요 관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 5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흡연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2020 국민 흡연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자 62.7%가 흡연을'가향담배로 시작'했고, 가향 담배로 첫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의 81.9%가 흡연을'캡슐 담배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캡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의 89.6%가 '캡슐담배가 흡연시작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는데, 이는 청소년이 처음 흡연을 고려할 때, 캡슐담배에 의해 흡연 동기가 강화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캡슐담배 등 가향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는 일반담배를 흡연자와 비교해 담배를 끊기 더 어렵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질병관리청은 2017년 가향담배로 흡연을 시도한 경우 일반담배에 비해 현재 흡연자일 확률이 1.4배 높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캡슐담배 및 가향담배가 흡연 지속 효과까지 높인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국내 담배 총 판매량은 2015년 가격 인상 이후 일시적으로 급감했으며, 최근 코로나19 이후 담배 판매가 일시 늘어나긴 했어도 지난 10년을 보면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기획재정부 2020년 담배 시장 동향에 따르면, 2020년 담배 총 판매량은 35.9억 갑으로 2011년의 44억 갑 대비 약 22.5% 감소했다. 반면 캡슐담배는 이 추세를 역주행 하고 있다. 캡슐담배의 판매량은 동기간 약 16배 증가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4월 발간한 현안분석 보고서'가향(加香)담배에 대한 해외 규제 사례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캡슐담배 판매량은 총 11억 갑으로, 2011년 7,000만 갑 대비 16배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2011년 담배 총 판매량 중 1.6%의 점유율에 불과하던 캡슐담배는 2020년 30.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작년 한 해 흡연자가 구입한 담배 3갑 중 1갑이 캡슐담배 였던 셈이다. 캡슐담배의 성장에 힘입어 전체 가향담배의 시장 점유율도 38.4%로 역대 최고 점유율을 기록했다. 가향담배 중 캡슐담배 비율은 약 8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캡슐담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담배는 인체에 해로운 기호식품으로, 담배가 주는 건강상의 악영향과 간접흡연에 대한 피해에 관해서는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반면, 캡슐담배의 악영향에 관해서는 아직 사회적 경감심이 부족하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캡슐담배 및 가향담배가 일반담배 보다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높다. 작년 11월, 가향담배와 일반담배의 연기를 분석한 한양대학교 김기현 교수팀은 캡슐담배에서 일반담배 대비 최대 4배에 달하는 휘발유성 유기화합물(벤젠, 아이소프렌, 아크릴로니트릴, 메틸 에틸 케톤, 자일렌, 스티렌 등)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는 캡슐담배와 캡슐이 삽입되지 않은 실험용 표준담배 간 유기화합물 수치를 비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캡슐이 발암 물질을 포함한 여러 위해 물질들을 함유하고 있으며, 캡슐 자체가 유해하다는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연구는 이번 달 14일 한국분석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도 일부 소개된 바 있다.
2017년 질병관리청은 국내 시판 캡슐담배 29종의 제품에서 128종의 유해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같은 해, 한국건강증진개발원도 '가향담배, 그 위해성 및 규제방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캡슐담배는 캡슐이 터지면서 필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건강 위해성이 커질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캡슐담배 규제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2017년 채택된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제9조 및 제10조 이행가이드라인은 담배 제품의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성분을 제한 또는 금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FCTC 7차 당사국 총회(COP7)는 캡슐담배의 매혹도를 높이는 제품 디자인에 대한 규제를 추가로 권고하기도 했다. 미국은 2009년부터 멘톨을 제외한 모든 궐련에 가향 물질 함유를 금지했고, 유럽연합(EU)도 궐련 및 각련 담배에 가향 첨가 및 가향 캡슐을 금지하고 있다.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박영범 교수는 최근 인문사회21에 기고한'궐련담배 규제 정책의 현황과 과제'논문을 통해 우리나라도 주요 선진국처럼 가향담배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교수는 청소년들의 흡연을 유도하는 가향담배의 시장 점유율이 30%가 넘고 있어 실효성 있는 금연정책을 위해서는 캡슐담배 규제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가향담배 전체의 대한 규제는 가향담배 흡연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고, 관련 산업계 등의 피해로 인한 소송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미국과 EU 처럼 궐련담배를 중심으로 일부 가향담배를 먼저 규제하는 점진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국회는 아직 캡슐담배 규제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정부는 2019년 5월 금연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가향물질 첨가를 단계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현재 뚜렷한 규제 움직임은 없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김수흥 의원도 캡슐담배 판매 및 제조를 금지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심사 과정에서 경제 논리에 부딪혀 논의가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31일 새로운'캡슐담배 금지'법안으로 『담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법안은 캡슐담배 및 감미필터 담배의 제조 및 수입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이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청소년과 여성의 건강에 대해서는 보다 세심하고 강력한 보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을 용이하게 만드는 캡슐담배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와 국회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담배규제기본협약 비준국인 우리나라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국제기준에 발맞춰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며 "흡연 예방과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입법의지를 밝혔다.
이번 법안발의를 계기로 정부가 2019년 금연종합대책을 통해 약속한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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