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발맞춰 기업 대표들은 2021년 신년사에 ESG를 빠짐없이 언급했고 앞다투어 ESG위원회를 설립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각종 ESG 순위가 발표되고, 다양한 ESG 웨비나와 유튜브 강의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차분히 살펴보면, ESG는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한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EU(유럽연합)를 시작으로 강화된 ESG 경영에 관한 세부규범들이 기업들에게 진입장벽과 거래비용으로 부과되며 기업 생존에 밀접한 영향을 주고 있다. 외국인 투자 비율이 상당하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가치사슬 활동을 ESG 항목에 맞춰 적절한 대응조치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를 받고 외국에 수출하는데 심각한 문제점이 초래되는 현실을 곧 마주할 수 있다.
ESG 규제에 갇혀 기업가정신 고유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상실할 필요는 없다. 기업의 가치사슬과 ESG를 성공적으로 결합하는 동시에 상품화로 연결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폐기물을 활용한 의류생산에 주력했고,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자사의 에너지관련 정보를 측정해 이를 모바일로 공개하며 데이터 노출 투명성에 기여하고 있다. ESG 모범사례를 분석해보면 제조업과 IT업계 모두가 창출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가 있다.
이처럼 ESG를 기업전략과 잘 융합해 새로운 시장과 상품, 즉 소비자와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높여서 사회 전반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는 게 중요하다. 2021년 마케팅과 이미지 메이킹의 차원을 넘어 실제로 ESG의 임팩트를 높인 대표주자로 기억될 한국 기업은 누가 될까?
◆ 금융사 및 대기업
ESG 생태계에서 가장 앞서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업은 금융사다. 금융사는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ESG 기업투자심사 제도를 도입하고, ESG 관련 주식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면서 그린워싱 방지, 환경훼손 기업활동에 대한 금융지원 제한 등 ESG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기준과 가치를 창설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중소기업들의 플랫폼 역할을 하며 큰 생태계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 중 사회전반에 임팩트 높은 ESG사업을 실행하거나 ESG 차원의 혁신을 달성하고 있는 기업은 아직 찾기 쉽지 않다. ESG 선포식과 ESG 위원회 설치 등 착한 기업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기업의 산업영역과 핵심역량에 맞춰 ESG를 생태계 구성원과 함께 가치창출의 기회로 전환시킴으로써 이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 정부 및 연구기관
정부와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ESG라는 새로운 게임의 룰을 모르거나 제대로 지키지 못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전교육을 제공하고 실정에 맞게 시행하도록 장려하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갖추도록 하는 등 대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구의 ESG 경영 과제 중에는 한국 사회의 실정에 맞지 않거나 동떨어진 부분들도 꽤 있는데, 이러한 과제나 기준을 무분별하게 국내에 도입, 수용함으로써 국내기업에게만 불이익이 발생하는 역차별의 현상이 초래되지 않도록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면서 한국적인 기준을 갖추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기업의 의사결정구조와 노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Social(사회)' 영역에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K-ESG지표를 체계화시키는 것은 시급한 국가적 과업이다.
◆ 대학기관 및 산업협회
우리나라 대학기관과 산업협회는 이제 특허출원을 넘어 인증기관과 기술표준화 시스템이 국제화될 수 있도록 분발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 전자 산업, 바이오 산업 등의 발전과 함께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기술혁신 국가가 되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특허등록 성과를 2018년 이후로 달성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인증기관이 없다. ESG 영역에서도 국내기업들은 여전히 선진국의 민간기관 인증을 얻기 위해 앞다투어 경쟁하고 있는데, 이는 여실히 우리의 한계점을 보여준다. 어느 기술이 그 시대의 산업표준 (industry standard)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많은 파생산업과 파급효과가 생겨난다. ESG 또한 기술수준에서 보면 결국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표준화 과정이며, 이 현상이 규제의 영역으로 고스란히 흘러가 새로운 형태의 비관세 무역장벽이 되어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예시적으로 탈중앙화 및 융합기능으로 대변되는 4차산업의 데이터 기반 기술을 ESG의 보편적인 항목에 맞추어 개발하여 최소 아시아 기업평가에 대한 정확도가 높은 인증 시스템으로 인정을 받고 점차적으로 세계적 신뢰도를 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 대학기관은 충실한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실용 및 융합기술의 민간기업, 산학협회, 정부기관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ESG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에서 시작
Norges Bank, Nordea, Robeco, AXA 등 해외 자산운용사들이 명시한 투자 제외기업 목록(Exclusion List)의 최근 변화를 보면 1990년대 초기에는 주로 국제협약에 위배되는 확산탄 등 무기제조나 죄악산업으로 분류됐던 담배, 주류, 도박산업의 기업들이 차지했다.
점차적으로 에너지 및 환경생태계와 직결된 기업들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ESG 원칙에 비추어 해외 사업장에서 발생되는 노동자 인권문제 및 환경훼손 문제 등이 대두된 기업들이 투자 제외기업으로 언급되고 있다.
ESG는 컴플라이언스 및 위기관리에서 시작되지만,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거기에 머물러 있으며, 여전히 ESG를 낭만적으로만 보거나 모범답안 작성에 몰두하고 있는 느낌이다.
공시의무화에 따라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기보다는 ESG를 사업활동과 연결하고 사업활동을 통해 구현하려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기업의 ESG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기존의 CSR를 ESG로 명칭만 바꾸고 있고, ESG의 지속성과 실질적인 효과에 의심을 가진 채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토로가 많다.
ESG의 최소한의 시작은 법과 규제를 준수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안주해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ESG 경영상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가치와 전략이 배제되면 매번 위기관리에만 급급하게 될 결과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 ESG의 성과는 Impact와 Value
본래 기업가정신의 시작은 혁신적인 문제해결(problem-solving)에 있지 않은가? 세계적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진정한 사회적 책임은 사회적 문제를 경제적 기회 및 이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The proper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turn a social problem into economic opportunity and benefit)" 라고 한 바 있다. 우리는 ESG라는 새로운 사회적 과제를 혁신적으로 풀어낼 시기에 있다. 기업활동의 가치와 전략에 ESG를 내재화함으로써 ESG를 새로운 혁신과 가치창출의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
당신의 조직은 변화하는 환경 및 사회규제들에 맞춰 바뀌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그리고 수동적인 위기관리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차별화시킬 수 있는 ESG 기술이나 서비스 또
우리 기업이 새로운 룰이 형성되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ESG 생태계의 다양한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다시 한번 점검하며 효과적인 ESG 임팩트와 솔루션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시기이다.
[이연우 법무법인 태평양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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