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서울백화점에서부터 파크원까지 연결되는 약 50m 거리의 인도에선 흡연자들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가득했다. 거리에는 담배꽁초가 나뒹굴고 있었으며 백여명의 직장인들이 모여 담배 연기를 뿜으며 행인들의 통행을 막고 있다. 이 거리를 지나가던 한 시민은 마스크 위에 손을 얹고 담배냄새를 피하기 바쁘다. 근처 빌딩에 근무한다는 한 30대 직장인은 근처에 제대로 된 흡연구역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피울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같은달 29일, 흡연자들과 연기로 가득하던 거리가 깨끗해졌다. 이 거리를 가득 채우던 담배 연기도, 흡연자들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 자리엔 금연구역임을 알리는 스티커와 '위반 시 과태료 10만원'이란 문구만이 보일 뿐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금연구역은 2016년 24만4582곳, 2017년 26만5113곳, 2018년 28만2641곳으로 매년 2만곳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흡연 구역은 2019년 1월 기준 6200곳, 금연구역 대비 2.4%에 불과하다. 실외 금연구역은 1만8134곳인데 비해 실외 흡연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84개소뿐이다. 서울시 26개 구 중 17개 구에는 관리대상인 흡연구역이 아예 없는 실정이다. 흡연자들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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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위헌 시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는 흡연권 역시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자유에서 비롯된 기본적 인권이라고 선언한 바 있어, 흡연권을 제한하기 위해선 공익과 제한되는 사익의 비교 형량과 절차적 정당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양재동 전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초구의 조치에 대해 흡연자들도 부정적 의견 일색이다. 흡연자인권연대가 흡연자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흡연자들은 서초구 양재동 전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질문(복수 응답 가능)을 던지자 일방적으로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고 억압받는 느낌이다(68.4%), 부스와 환기 시설이 없어 비흡연자에게도 불편을 줄 것 같다(63.8%), 흡연구역이 너무 멀리 있어 불편하다(39%) 등의 의견을 보였다. 아울러 흡연자의 흡연권 및 행복추구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일방적 양재동 전면 금지구역 관련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자는 의견도 87.4%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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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흡연자들은 간간히 설치된 흡연구역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설문에 응답한 10명 중 9명 이상은(95.8%) 흡연구역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불만족하는 이유로는(복수응답 가능) 흡연 구역이 어디에 있는 지 몰라서(73.6%)가 1순위로 꼽혔다. 흡연을 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흡연구역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외 흡연구역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60.6%), 흡연구역 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52.2%), 흡연구역 내 일반 담배와 전자 담배의 구분 필요성을 느낀다는 의견도 37.2%를 차지했다.
향후 흡연자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복수응답 가능)으로는 대형건물과 쇼핑몰, 아파트 등에 흡연자들의 건강권을 고려한 흡연구역 필수 설치(81.6%)가 1순위로 꼽혔다. 다음으로 흡연 구역 내 환기시설 필수 설치(70.0%), 흡연 구역 설치 시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 구역 분리 설치(50.8%)를 정책우선 순위로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흡연시설을 원하는가에 대한 선호도 질문에서는 흡연자 10명 중 7명이(71.2%) 환기 시설 및 의자 등의 편의 시설이 설치 되어있고, 전자담배와 일반 담배 구역이 분리된 흡연구역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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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에 따르면, 공중 이용시설에 금연구역 설치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흡연구역에 대한 규정은 금연구역을 설치한 장소에 흡연자를 위한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즉, 금연구역 지정은 의무사항이지만 흡연구역 지정은 자율에 맡겨져 있어 금연구역 이외에서의 흡연은 원칙적으로 자유인 것이다. 정해진 흡연구역을 찾지 못한 흡연자들은 오늘도 길거리와 아파트 곳곳을 떠돌고 있다.
이에 따라 비흡연자들의 간접 흡연 피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를 위해 흡연구역 설치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싱가포르는 건물과 지하철 등 출입구로부터 10m, 도로로부터 5m 떨어진 곳에 흡연구역을 만들고, 눈에 잘 띄게 이정표도 설치하고 있으며, 일본은 2002년 건강증진법에 간접흡연을 막는 것을 목표로 명문화하여 간접흡연을 2022년까지 0%로 줄이기위해 흡연 구역을 적극적으로 확대 설치하고 있으며, 흡연자의 건강을 고려하여 일반담배와 전자담배 구역을 분리한 선진형 흡연 구역을 설치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 전자담배는 흡연구역 제한 없이 필 수 있지만, 전자담배에서 소량의 배출물이 발생하기 때문에 전자담배 전용 구역을 별도로 분리해 설치하고 있다. 전자담배 별도 분리 구역 설치를 통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박상륜 흡연자인권연대 대표는 "흡연자들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접근성이 좋은 흡연구역의 설치가 늘어난다면, 굳이 거리에서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흡연자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지금의 금연정책은 흡연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뿐이다"라며 정부의 금연 정책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흡연자들이 부담하는 막대한 재원은 흡연자를 위해 쓰여야 한다. 특히 건강증진 부담금으로 조성된 기금은 흡연으로 인한 건강상의 위해를 예방 또는 감축하고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지출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현재 다른 목적으로 거의 전용되고 있는 형편"이라며 "흡연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비흡연자의 간접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림막이 설치되어야 하며, 흡연자의 건강을 고려한 환기시설 설치 및 일반담배와 전자담배 구역이 분리된 선진형 흡연 시설 확대를 위해 기금이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흡연자들이 매년 부담하는 담뱃세는 지난해 건강증진 부담금 3조원을 포함해 12조원에 달하
흡연자 인권연대는 오는 4월 7일 재보궐 선거 후보자들에게 흡연자들이 생각하는 흡연구역에 대한 문제점과 건강권이 보장된 흡연구역의 설치, 안내, 관리에 대한 흡연자들의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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