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뭐가 겁나길래"…LH, 예산낭비 실태조사도 거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국회 용역을 받아 진행한 공공공사 예산낭비 실태조사에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땅 투기 의혹으로 공분을 사고 있는 LH가 국회 용역과제에 대한 협조까지 임의로 거부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1일 경실련은 '장기계속공사 계약 및 예산배정 방식의 문제점과 대안' 국회 용역보고서를 통해 공공공사의 공사비 증액 및 사업지연 발생으로 인한 국가예산 낭비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LH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LH가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공공공사 예산배정 방식의 문제점을 연구하기 위해 정부 산하의 5개 지방국토관리청, LH, 한국철도공단, 한국도로공사의 2019~2020년 사업을 조사 대상으로 설정하고 각 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LH만 거부한 것이다. 경실련은 보고서에 "LH는 별다른 이유 없이 자료 제공을 거부해 조사 대상 사업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각 지역 대표자와 주민들이 지난 10일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LH 직원 투기 의혹 토지 앞에서 LH공사를 규탄하고 3기 신도시 공공주택지구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3.10.[한주형 기자]

경실련이 각 기관들로부터 제출 받은 조사 대상 사업 57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89%에 해당하는 49건이 장기계속공사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계속공사는 총공사금액으로 발주하고 각 회계연도 예산 범위 내에서 배당받은 예산만큼만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말하면 기존에 예상했던 예산이나 중간에 늘어난 공사비가 확보되지 않으면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기계속공사 49건 중 67%인 33건은 총공사비 5% 미만 예산으로 사업에 착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장기계속공사 49건 중 21건(42%)은 공사비가 1%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됐다.

경실련은 "국도나 철도 건설과 같은 대형 국책사업은 수년에 걸쳐 이행되는 사업이므로 총 사업예산이 먼저 확보가 된 뒤에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며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채 사업 착수만 서두른다면 필연적으로 준공지연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사 대상 57건 가운데 51건에서 공사비 증액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개 사업당 평균 증액 규모는 108억원으로 집계됐다. 경실련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채 졸속 추진되는 장기계속공사는 공기지연→잔여공사 증가→공사비 증액의 악순환 구조를 형성해 예산 낭비를 부추기는 구조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57개 사업 중 사업지연이 발생한 사업은 47건으로 82%에 달했다. 2019~2020년 사이 준공한 공사 57건 중 12개월 이상 완공이 늦어진 사업은 27건이었고, 3년 이상 공사기간이 늘어난 사업도 11건이나 됐다.

보고서는 "국책사업 절반 가량이 평균 2년 이상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있다"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이 매년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공공건설 공사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예산 낭비를 위해 장기계속공사 방식을 폐지하고 선진국 방식인 계속비공사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비공사 제도는 사업 예산을 정부에서 미리 다 받아 공사기간에 맞춰 수행하는 방식이다.
경실련은 "비전문가 선출직들의 무분별한 개발 공약으로 시행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고스란히 후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이 같은 위기에서는 국가재정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철저한 준비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