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 '무주택자' 젊은이들은 우울합니다. 서울 사는 것이 특권이자 스펙이라는 웃픈 소리까지 나옵니다. 각종 정보, 교육, 일자리, 인프라가 집중된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성공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엄마야 누나야 서울살자" 노래를 부릅니다.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 123조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헌법 조항 중 가장 무색한 조항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서울에는 경제·문화·정치·교육 등 거의 모든 인프라가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지 못한다고 너무 우울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는 바뀌는 것이고, 도시의 역사가 이를 증명해왔기 때문이죠. 과학기술 발전과 인구구조의 급변 속 '서울거주'의 가치가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믿기 어려우시다고요? 120여년 전 서울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은 중국, 일본 등을 두루 여행하고 1894년 여름 개항기 조선에 도착합니다. 1894년은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 등 나라 안팎으로 큼직한 사건이 발생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바르텍은 서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조선의 사회와 문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해 <조선, 1894년 여름>이라는 책에 담았습니다. 바르텍은 1894년 서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도시 중에서도 서울은 확실히 기묘한 도시다. 25만명 가량이 거주하는 대도시 중에서 5만여 채의 집이 초가지붕의 흙집인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가장 중요한 거리로 하수가 흘러들어 도랑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그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는 변변한 산업이란게 있을리 만무했고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었다고 합니다. 바르텍은 "서울은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집,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라고 푸념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당시 서울의 위생상태입니다. 베르텍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보다 더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가 어디있을까"라고 당시 서울의 상황을 신랄하게 묘사합니다. 가로등도 상수도도, 마차도, 보도도 없는 '어둠의 도시'가 1894년 서울입니다. 바르텍은 "서울은 아마도 호텔이나 찻집, 그 밖에 유럽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를 볼 수 없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수도이자 왕의 거주지일 것이다"라고 말하죠. 바르텍이 조선에 도착하기 직전 여행한 곳이 일본인데 격차가 이미 격차가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조선을 여행하는 세계 여행자는 거의 전무했고, 100여명의 외교관과 선교사들만 서울에 체류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바르텍의 돌직구는 계속됩니다. 그는 열악한 조선과 서울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그리고 원인을 무능한 조선 정부에 돌립니다. 그는 "서울은 자연의 힘이 비참함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탐욕스럽고 돈에 굶주린 양심 없는 정부가 이를 초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관찰한 그는 조선인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내립니다. "조선인들의 내면에는 아주 훌륭한 본성이 들어있다. 진정성이 있고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한 상황에서라면,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루어낼 것이다."라고요. 놀랍지 않나요. 마치 대한민국의 현재를 예언한 것 같습니다. 120여년이 지난 지금 그가 다시 서울 땅을 밟는다면 크게 놀랄 것 같습니다.
도시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도시는 인류문명사의 발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죠. 기원전 4000년, 최초의 도시가 탄생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도시는 정치·경제·문화·종교·예술 등 인류의 모든 문명은 곧 도시의 발전과 그 궤적을 함께해왔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의 도시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엄청난 인기 상품이 되지 않을까요? 앞서 1894년 서울의 사례를 살펴본 것처럼 과거의 도시를 살펴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객관화해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또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도시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음달 2일 세계지식포럼이 선보이는 '날리지 스트림(Knowledge Stream)'에서는 '도시의 진화'를 다룹니다. 촉망받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메트로폴리스>의 저자인 벤 윌슨과 '인문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건축과 교수가 '도시는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How did cities evolve?)'를 주제로 뜨거운 토론을 벌일 예정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펨브룩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벤 윌슨은 인류 역사와 문명에 관한 통찰력 있는 저술로 영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역사학자이자 작가입니다.
그는 신작인 <메트로폴리스>를 통해 최초의 도시 우루크가 세워진 이후 오늘날까지 총 6000년간 인류 문명을 꽃피웠던 주요 도시를 살펴봅니다. 도시의 역사 속에서 상업, 국제무역, 예술, 매춘, 위생, 목욕탕, 길거리 음식, 사교 등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류문명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매력적으로 펼쳐냅니다. 특히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가장 잘 대변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영리한 방법을 택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박진빈 경희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 책에 대해 "결코 시대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시공을 넘나들며 흥미로운 일화와 사건,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껏 살펴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벤 윌슨 작가와 유현준 교수는 날리지스트림에서 도시·건축을 중심으로 팬데믹과 기후 변화의 난제를 넘어 도시가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댈 예정입니다. 역사적으로 도시는 역병과 세계적 유행병, 기후변화, 경제 주기 변화 등의 위기를 수도 없이 맞닥뜨렸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진화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해왔다는 것입니다.
※세계지식포럼이 지난해 매달 선보였던 월례포럼은 올해부터 '날리지 스트림(Knowledge Strea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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