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 제약업계는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을 도입해 판매하거나 특허 기간이 만료된 약의 복제약을 만들어 파는 데 집중해왔지만, 최근 달라졌다. 가장 먼저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한미약품에 이어 업계 1위 유한양행과 2위 GC그룹까지 빅딜에 성공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랩셀과 미국 아티바바이오테라퓨틱스는 개발 중인 키메라항원수용체(CAR)-자연살해(NK) 세포 치료제 후보를 미국 MSD와 함께 3개의 고형암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공동 개발하기로 하는 계약을 지난달 28일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모두 18억6600만달러다. 아티바는 GC녹십자랩셀이 NK세포치료제 개발을 위해 미국에 설립한 자회사다.
이번 GC녹십자랩셀의 기술수출 규모는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의 퀀텀프로젝트(5조1845억원), 작년 알테오젠의 피하주사 전환 플랫폼 기술수출(4조6770억원)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특히 알테오젠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CAR-NK 세포체료제 후보의 기술을 비독점적으로 기술수출한 GC녹십자랩셀은 향후 추가적인 기술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
CAR-NK 세포치료제는 선천면역체계의 일부인 NK세포가 암세포와 더 잘 결합하도록 체외에서 유전적으로 조작해 만들어진다. NK세포는 사람의 몸 속에 비정상적인 세포가 생기면, 이를 먼저 인지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한다.
GC녹십자랩셀은 지난 2011년 지씨랩셀이란 이름으로 설립돼 녹십자의 세포치료제 사업을 양수했고, 이후 녹십자랩셀로 사명을 바꿨다. 작년에는 매출의 30% 가량을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었다. 특히 글로벌 트렌드가 CAR-T나 NK세포치료제에 집중됐을 때부터 과감하게 차세대 기술인 CAR-NK세포치료제 개발에 역량을 집중한 게 성공의 배경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GC그룹에 앞서서는 유한양행이 지난 2018년 11월 항암신약 레이저티닙(제품명 렉라자)을 얀센바이오파마에 총액 약 1조4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하면서 체질개선의 성과를 내놨다. 레이저티닙은 지난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조건부 허가를 받아 국산 30호 신약이 됐다.
레이저티닙은 제약업계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이 개발하던 후보물질을 도입해 임상 개발 단계에 진입시킨 뒤, 글로벌 빅파마에 대규모 기술수출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후 유한양행은 지난 2019년 1월 후보물질 도출 단계의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길리어드사이언스에 7억8500만달러(약 8800억원)에, 또 다른 NASH 신약 후보 YH25724를 베링거인겔하임에 8억7000만달러(약 1조53억원)에 각각 기술수출하는 등 최근 5년동안 모두 4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레이저티닙의 기술수출 성과를 내기 전까지 유한양행은 다국적 제약사의 대형 품목을 도입해 '매출 규모만 업계 1위'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실제 작년 상반기 매출에서 상품 매출의 비중은 56.34%에 달한다. 그러나 오는 3월 퇴임을 앞둔 이정희 사장이 취임한 지난 2015년부터 적극적으로 R&D에 투자해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국내 제약업계의 R&D 선두주자는 한미약품이다. 가장 먼저 대규모 기술수출 성과를 내놨고, 단순한 복제약 제조·판매보다 개량신약 개발에 집중해 자체 개발한 의약품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가장 앞서 신약 개발에 주력한 탓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기술수출된 신약 후보의 상당수가 반환됐다. 특히 작년에는 사노피의 당뇨 신약 후보 에페글레나타이드 권리 반환으로 공동 R&D 분담금을 실적에 반영하면서 3분기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경우 매경닷컴 기자 cas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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