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열린 한국재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를 둘러싸고 '보편 증세'와 '재정준칙'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벌써 나라살림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장기재정 전망치와 관련해 엇갈리는 수치를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내놔 갑론을박이 한창인 상태이기도다. 재정 상황이 계속 나빠질 가능성이 크지만 정부 당국에서 장밋빛 청사진만으로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재정지출이 급증하고 국가부채도 빠른 속도로 악화하자 재정운용을 큰 틀에서 다잡겠다고 기재부가 최근 내놓은 재정준칙은 그동안에도 허술하다는 지적을 적잖이 받아 왔다. 준칙을 짜는데 기본이 된 장기재정 전망치가 너무 낙관적으로 잡혔다는 게 근거였다.
기재부는 9월 장기재정전망에서 오는 2060년 국가채무 비율을 81% 정도로 내다봤는데 이게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당장 국회예산정책처는 같은 해의 국가채무 비율이 158%를 넘어설 것이라면서 격차가 2배에 육박하는 전망치를 제시했다. 전망이라는 것이 원래 맞기는 힘들지만 2배씩 차이가 난다면 뭔가 착오가 있거나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계산을 잘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논란이 이는 와중에 KDI가 공개한 보고서는 재정여건이 앞으로 더 안좋아질 가능성이 크니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게 세수를 확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번에 나온 보고서는 완결된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구조개혁 방안'을 찾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말까지 연구가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한다. 완성되지 않은 연구의 일단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이례적이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만큼 재정악화가 심각해질 우려가 있으니 확실한 대응책을 마련이 시급하다는 KDI의 의사 표시로 해석하고 있다.
김학수 KDI 연구위원이 발표한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부가세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지난 1977년이다.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부가세는 10%라는 세율이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세수가 부족하면 부가세율을 올려 세입을 늘리기도 하는 핀란드.스위스.포르투갈 등 외국과 다른 부분이다. 독일.영국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던 부가세율이 2018년에는 91~20%까지 올렸다. 이렇게 엄격하게 단일세율을 유지했던 부가세의 세율을 2%포인트 올리고 면세 대상을 줄여야 한다는 게 김 연구위원의 제안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가 고령화하는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로서는 생산인구 감소에따른 세수감소와 복지 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는 발등의 불이다. 지금까지는 종합부동산세.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부자 증세'로 메꿨지만 고령화의 늪이 커질수록 막아내기 어려워진다. KDI 계산에 따르면 부가세율을 10%에서 12%로 올리고 면세대상이던 교육.의료서비스 등에 5% 정도의 세율을 매기면 2050년에도 현재 수준인 50조원의 부가세 수입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외면하고 현행 체제를 유지하면 2050년에 10조원의 세수가 펑크가 난다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면 올해 종부세로 거둬들인 세금 3조6000억원의 3배에 육박하니 부자증세만으론 해결이 쉽지 않은 골칫거리다. 물론 이번 KDI 발표에서는 통계청의 인구전망치를 기반으로 가계 부문 부가세만 집계해 실제 부가세수와 차이가 나지만 큰 틀에서 변화 상황은 가늠해볼 수 있다.
부가세율 인상이 곧바로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세수 감소 이슈는 커질 수 밖에 없고 논의해야 할 필요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국정감사에 앞서 지난 8월 발간한 '2020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서 '부가세 인상 논의'를 하나의 테마로 다루면서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사태 회복과 장기적으로 저성장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의 하나로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논의해볼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문제는 부가세는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상품.서비스에 매겨지는 간접세금이어서 서민들에게 그만큼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동안에는 부동산 부자, 주식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둔다는 논리로 증세가 이뤄져 어물쩍 넘어갔지만 보편 증세로 가게 되면 대중적인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고령화로 인한 세수 감소와 지출 증가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고 증세와 관련된 다각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부자 증세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표 계산만 하고 있다가는 앞으로 들어설 정부에는 부담만 떠 안기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세재정연구원에서 최근 나온 지
[장종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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