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삼성,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굉장한 기업으로 키워냈습니다.
이 회장의 족적 짚어보겠습니다.
산업부 차민아 기자 나왔습니다.
【 앵커멘트 】
오늘 보니깐 우리가 기억하는 이건희 회장의 어록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 기자 】
1987년 12월 회장에 취임하면서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은 지켜졌고요.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기사에서 봤듯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벽을 깨닫고 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실상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죠.
▶ 인터뷰 : 이건희 / 삼성그룹 회장 (1993년)
- "일류는 절대, 내 말에 '절대'라는 용어는 여간해서는 잘 안 써요. 절대 안 된다 이거야, 지금 안 변하면."
당시 또 나온 말이 뛸 사람 뛰고 놀 사람 놀아라, 대신 남의 발목 잡지 말아라.
부장까지 오후 6시면 퇴근해라, 놀아도 된다, 놀거면 제대로 놀아라 이런 말도 했습니다.
어떻게보면 지금 앞서 나간다는 스타트업들의 분위기가 이런데, 이 회장이 30년 가량 먼저 내다본 거죠.
【 앵커멘트 】
그런데 이정도 큰 회사가 선언을 했다고 바로 바뀌긴 힘들잖아요.
전자제품 화형식이 그래서 나온거죠.
【 기자 】
신경영을 선언했는데 그룹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없자 이 회장이 2년 만에 또 결단한게 바로 삼성전자 운동장에서 벌인 화형식입니다.
과거와의 단절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죠.
제가 사진 한 장을 갖고 나왔는데요.
이건희 회장이 한창 휴대폰 개발을 지휘하던 90년 후반, 당시 애니콜을 뜯어보면 기판에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박혀있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 의지에서 오늘날의 갤럭시S 시리즈가 나왔고 괴물같던 노키아와 모토롤라, 애플까지 제쳤겠죠.
2014년 신년 하례식에서도 "사업의 질을 넘어 품격과 가치를 높이자, 시대의 흐름에 맞지않는 관행은 떨쳐내자"고 말했는데요.
지금 현 시점에서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 앵커멘트 】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공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늘도 있었죠?
【 기자 】
가장 큰 사건은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폭로였죠.
당시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과 맞물려 큰 파장을 몰고왔고 결국 특검 수사로 불구속 기소됐죠.
이 사건을 계기로 이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납니다.
2년 후인 2010년 '진짜 위기'를 강조하며 경영에 복귀하기까지 마음고생도 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인터뷰 : 이인용 / 당시 삼성 부사장 (2010년 3월)
- "(이건희 회장이)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고."
이 회장 개인적으로도 맏형 이맹희 전 회장 등 형제간 상속 분쟁이 벌어졌었는데요.
이맹희 전 회장에 이어 이건희 회장까지 별세하면서 화해는 끝내 이뤄지지 못하게 됐습니다.
【 앵커멘트 】
이 회장이 고비마다 딛고 일어선 만큼 다른 기업들에도 많은 영향을 줬죠?
【 기자 】
재계도 일제히 애도를 표하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한국 산업 고도화에 큰 업적을 남긴 재계 최고의 리더라고 회고했고요.
혁신 정신을 이어받아 1등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재계 오너들은 직접 조문을 갈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로 빈소 내부에 50명 이상 모이는 게 금지된 만큼 각 그룹은 내부적으로 조문 시간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앵커멘트 】
재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이 큰 업적을 이룬 만큼 앞으로의 뉴삼성에도 기대를 걸어봅니다.
차민아 기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