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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유발` 불량 중고차, 대기업 진출이 `해결사` 될까

기사입력 2020-08-31 15:33 l 최종수정 2020-08-31 17:15


소비자들이 중고차를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국산 중형세단을 사려면 3000만원은 예사로 들어간다. 집 다음으로 비싼 재산목록 2호가 된다.
신차 중 가장 저렴한 경차를 구입할 때도 1000만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고차는 1000만원으로 경차보다 더 크고 비싼 준중형차나 중형차를 살 수 있다. 3000만원이면 BMW,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등 프리미엄 수입차도 구입할 수 있다. 세금과 보험료 부담도 신차보다 작다.
단, 문제가 있다. 중고차는 신차와 달리 품질이 제각각인 데다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성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해서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가 선보인 경제학 이론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적게 가지고 있는 측은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는 시장 불신으로 이어져 결국엔 시장 황폐화와 붕괴를 가져온다.
중고차 유통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사기·범죄 행위가 빈번하기 발생하기 쉬운 곳이다. 판매자인 딜러는 중고차의 상태를 비교적 자세히 아는 반면 소비자는 그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무사고차를 사려다 오히려 사고차를 비싼 값에 속아 산다. 주행거리가 조작된 차, 침수 흔적을 감춘 차, 사고 규모를 축소한 차를 피하려다 사기꾼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시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중고차 딜러는 가족에게도 차를 속여 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로써 중고차 시장은 신차 판매 증가에 힘입어 양적 규모는 커지고 중고차 거래대수도 신차 판매대수보다 많아졌지만 질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한 채 여전히 '돈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으로 여겨지게 됐다.
[사진 출처 = BMW, 벤츠, 현대캐피탈]
↑ [사진 출처 = BMW, 벤츠, 현대캐피탈]
SK엔카(현 엔카닷컴)는 이 같은 정보 비대칭성과 시장에 대한 불신을 기회로 여겼다. SK엔카는 2000년 1월 캐치프레이즈 '트러스트 SK엔카, 대기업이 하면 다르다'를 내걸고, 소비자가 직접 중고차 시장을 찾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차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했다. 중고차 온라인 쇼핑몰과 함께 국내 중고차 업계 최초로 진단·보증 서비스도 선보였다.
딜러도 온라인 광고를 통해 차량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을 찾아오는 소비자를 기다리거나 소비자를 찾아갈 수고를 덜 수 있게 된 셈이다.
새로운 판매루트가 생겼지만 소비자와 직접 대면 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독차지했던 중고차 업계가 SK엔카를 곱게 볼 리 만무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갖춘 대기업의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비자 단체들도 환영했다. 소비자 보호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SK엔카는 2001년 4월 서울 영등포에 첫 직영점을 열고 오프라인 중고차 매매사업까지 진출했다.
SK엔카가 시장에 정착하면서 비슷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고차 쇼핑몰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일부 악덕 딜러들은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온라인 쇼핑몰을 악용하기 시작했다. 직접 매물을 볼 수 없는 온라인 쇼핑몰의 허점을 악용해 '허위 매물' 사기 행각을 벌였다. 이를 막기 위해 SK엔카는 허위 매물 신고제, 삼진아웃제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우후죽순 늘어난 온라인 쇼핑몰,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중고차 피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도 중고차 유통은 신차 유통보다 신뢰도가 떨어진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중고차 시장은 '레몬'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구입해서 써보지 않으면 품질을 알 수 없는 제품이 거래되는 시장을 레몬시장이라고 부른다.
레몬은 속어로 '불쾌한 것' '불량품'이라는 뜻이다. 1965년에 생산된 레몬 색상 폭스바겐 비틀이 고장이 많았고 견디다 못한 소유자들이 중고차로 많이 팔았는데, 이때부터 레몬은 결함 있는 중고차를 뜻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가 시장에 참여해 기존 중고차 업계와 상생하면서 중고차 유통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 덩달아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는 추세다.
3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난해 중고차가 4081만대 거래됐다. 신차 판매대수(1706만대)보다 2.4배 많았다.
지난해 미국 중고차 거래액은 8406억달러(약 996조원)로 신차(6365억달러)를 훌쩍 넘었다.신차 판매대수가 2015년 대비 2.4% 감소한 반면 중고차는 9.6% 증가하며 성장했다.
[사진 출처 = BMW, 벤츠, 현대캐피탈, 렉서스]
↑ [사진 출처 = BMW, 벤츠, 현대캐피탈, 렉서스]
미국에서 중고차 유통규모가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완성차 업체의 인증 중고차를 중심으로 중고차에 대한 엄격한 성능점검과 품질보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중고차 이력과 시세, 잔존가치 등의 차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과 대형 중고차 딜러들의 정찰제 도입 등도 시장 신뢰 향상에 기여했다. 중고차 유통의 허점인 정보의 비대칭성이 점차 해결되면서 소비자들이 중고차 구입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 중고차 판매업체들은 연식과 주행거리, 품질, 재상품화 수준, 서비스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상품을 취급하는 등의 역할분담을 통해 상호 공존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구매력과 취향에 맞는 판매채널을 선택해 구입할 수 있다.
시장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미국 중고차 시장은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하는 완성차 브랜드 ▲중고차만 판매하는 독립 딜러 및 온라인 판매업체 ▲중고차 대량 매각 알선업체(리마케터) ▲중고차 매매 알선업체(브로커) ▲중고차 경매장에 이르기까지 판매 채널이 다양하다.
중고차 이력 및 상태정보 제공업체, 중고차 잔존가치 및 시세정보 제공업체, 중고차 재고 및 고객관리 등 통합 솔루션업체, 중고차 시험·인증 전문기관등 관련 비즈니스도 활성화됐다.
미국에서는 완성차 브랜드(수입차 브랜드 포함)가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해당 브랜드 전시장을 가면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구매할 수 있다.
이들 완성차 브랜드들은 신차와 함께 5~6년 안팎의 중고차를 대상으로 완성차업체의 기술력을 활용해 100~200여 항목의 정밀 성능점검과 수리를 거쳐 무상보증기간을 연장해 판매한다. 이 차량들을 CPO(Certified Pre-Owned, 인증 중고차)라고 부른다.
완성차 브랜드가 판매하는 인증 중고차(CPO)는 일반적인 중고차보다 품질과 서비스 수준이 높기 때문에 중고차 구매의 리스크와 스트레스를 줄이고(Peace of Mind)신차급 중고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완성차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CPO)가 차지하는 비율은 5~6%에 불과하지만 엄격한 성능점검과 품질보증은 다른 중고차 유통 및 판매딜러로 확산돼 중고차 품질 수준과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미국 중고차 딜러 연합회 '전미독립자동차딜러협회(NIADA)'와 일부 대형 독립 딜러들은 완성차업체들의 인증 중고차의 영향을 받아 자체적으로 인증 중고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최대 중고차 판매회사 '카맥스(Carmax)'도 완성차 관련 업체는 아니지만 자체 성능점검 시스템을 마련하고 125개 항목 검사와 함께 구매 후 90일 또는 4000마일까지 품질을 보증한다.
완성차 브랜드에서는 고객들이 안심하고 중고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차량 이력 리포트 중 비교적 가격이 비싼 카팩스 리포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미국 온라인 중고차 판매 1위 업체 카바나(Carvana)와 카맥스는 또 다른 차량 이력 제공업체인 오토첵(AutoCheck)의 리포트를, 중소형 딜러들도 소비자들이 요청할 경우 차량 이력 리포트를 무료로 제공한다.
미국 소비자들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켈리블루북(KBB)과 트루카(TrueCar), 애드먼즈닷컴 등의 업체를 통해서는 공신력 있는 시세와 잔존가치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중고차 구입에 앞서 복수의 중고차 가격정보 회사로부터 시세를 확인한 뒤 적정가를 제시하는 딜러와 판매 사이트를 방문해 실제 차량 상태와 차량 이력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사진 출처 = BMW]
↑ [사진 출처 = BMW]
독일 중고차 유통 규모도 완성차 업체의 인증 중고차 등에 힘입어 성장 추세다. 지난해 독일의 중고차 거래대수는 719만5437대다. 신차 판매대수 360만7258대보다 2배 많다.
독일 중고차시장에서 완성차 브랜드가 판매하는 인증 중고차의 비중은 미국(5~6%)보다 높은 16~17% 수준이다.
독일에서는 차량 상태가 우수한 중고차가 대량으로 지속 공급될 수 있는 시장 환경과 함께 완성차 업체의 성능점검과 보증기간 확대 등이 타업체로도 확산돼 시장 신뢰를 높였다. 이는 전체 중고차 시장 파이도 키우는 데 기여했다.
완성차 브랜드들은 상태가 우수한 중고차를 대상으로 엄격한 성능점검을 실시하고 최대2~3년까지 보증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별도의 브랜드까지 붙여 판매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완성차 브랜드들이 전시장내 공간을 분리해서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하거나 대형 판매점의 경우 신차 판매를 위한 건물 외에 별도 건물에 중고차를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일은 자동차의 원조 나라인 만큼 전통적으로 티유브이슈드(TUV SUD, 1866년 설립)와 데크라(DEKRA, 1925년 설립) 등과 같은 차량 평가 및 검사·인증기관, 슈바케(Schwacke)와 같은 잔존가치 평가업체들이 활약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트윈기술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차량 상태 점검, 중고차 재고 관리 등의 IT솔루션 및 데이터 분석, 신차급 중고차를 사용하는 구독형 서비스, 완성차 업체의 온라인 거래 플랫폼 등 첨단 혁신 산업으로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명품 중고차라 부르는 인증 중고차시장이 수입차 브랜드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증 중고차는 2003년 크라이슬러가 처음 도입했다. 2005년에는 BMW가 뛰어들었다. 그러나 2010년 이전에는 연간 거래대수가 1000대 미만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수입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인증 중고차 공급이 원활해지고 덩달아 수요도 증가하면서 수입차 브랜드 전체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현재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렉서스, 재규어 랜드로버, 폭스바겐, 포르쉐, 롤스로이스 등이 선보이고 있다. 2015년부터는 현대캐피탈도 국산 인증 중고차를 선보였다.
인증 중고차 시장은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수입 인증 중고차 시장을 성장시킨 주역인 BMW의 경우 2005년 거래대수는 86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 1129대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만23대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3년 연속 1만대 이상 판매됐다.
벤츠는 사업 개시 연도인 2011년에는 450대를 판매했을 뿐이지만 5년 뒤인 2016년에는 2640대, 지난해에는 6450대를 거래했다.
그러나 미국·독일과 달리 국내에서 완성차 브랜드들은 중고차 시장에 새로 진출하거나 사업을 확장할 수 없는 상태다.
중고차 매매업이 2013년부터 5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신규 진출과 확장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기한이 만료됐지만 이를 대체하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가 도입돼 현재 중소벤소기업부가 중고차 판매업의 지정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기존 중고차 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 재지정을 신청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은 또다시 5년간 중고차 판매업에 새로 진압할 수 없다.
중소벤처기업부 심의에 앞서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중고차 판매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동반위가 현재까지 생계형 적합업종 적합 여부를 심의한 업종 중 부적합 결론을 내린 것은 중고차 판매업이 유일하다.
완성차 브랜드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이에 중고차 시장 진출 의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반면 기존 중고차 업체들은 생존권 위협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중고차 소비자 보호와 함께 중고차 시장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과 대기업의 진출은 골목상권 침해와 마찬가지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중고차 업계는 소상공인 생존권을 주장하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보호하는 동안 소비자 보호에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중고차 유통 발전도 더뎠다는 측면에서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크다.
중고차 유통을 불신하는 소비자들은 정보의 비대칭성 완화, 중고차 피해 구제 강화 등의 이유로 대기업 진출을 반기는 편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대기업과 기존 중고차 업계가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중고차 유통도 투명화되고 덩달아 중고차 시장 규모도 현재보다 커져 대기업과 중고차 업계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국내 중고차 시장은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규모도 작고, 연관산업 발전도 더딘 편이다.
지난해 국내 중고차 거래건수 369만5171건이다. 겉으로는 신차 판매대수(179만5761대)보다 2배 많다. 하지만 중고차 '거래대수'가 아니라 '거래건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369만건이 369만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고차 거래건수는 개인간 거래건수와 사업자 거래건수의 합이다. 개인간 거래건수는 실제 소비자에게 팔린 '거래대수'다.
사업자 거래건수는 매매업체가 차주에게서 차를 매입한 뒤 이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 두번의 이전 등록이 발생하고 사업자 거래건수에 포함된다. 매매업체끼리 사고팔아도 사업자 거래건수에 포함된다.
최소 두 번 이상의 이전 등록 건수가 사업자 거래건수에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개인간 거래건수+사업자 거래건수 1/2'이 중고차 최다 거래대수라고 볼 수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해 계산하면 지난해 중고차 거래대수는 개인간 거래건수(129만3805건)에 사업자 거래건수(240만1366건)의 2분의 1(120만683건)을 합한 249만4488대다. 업계는 중고차 실제 거래대수는 신차 판매대수보다 1.1~1.4배 정도 많은 수준이라고 추정한다.
중고차 시장 규모가 신차 시장 규모보다 2배 이상인 미국이나 독일과 비교하면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할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내 중고차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발생한 극심한 소비자 불신이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며 "미국과 독일처럼 완성차 업계와 기존 중고차 업계가 힘을 합쳐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중고차 유통을 선진화하고 중고차를 '허브'로 삼아 새로운 사업도 추진하는 상생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기성 기자 gistar@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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