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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은 짧게는 4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지속된다.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부른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이런 기분은 일반인의 경우 1분에 120회 정도의 심장박동수로 30분 이상 달릴 때, 마라톤 선수의 경우는 35km 지점을 지날 때 느낄 수 있다. 달리기뿐 아니라 수영, 자전거, 축구, 농구 등 장시간에 걸쳐 운동하는 종목에서도 나타난다.
러너스 하이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물질은 엔도르핀(endorphin)과 내인성 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다.
엔도르핀은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아편의 주성분이 되는 알칼로이드다. 엔도르핀은 스트레스 조절에 영향을 끼치는 호르몬으로, 뇌를 진정시키고 운동 도중 생기는 근육통을 완화해준다.
통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마약인 모르핀보다 100배나 강하다. 체내에 분비되기 때문에 체내 모르핀(endogeneous morphin)이라는 뜻에서 엔도르핀이라 부르게 됐다.
엔도르핀은 산소를 이용하는 유산소운동에서는 별다른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운동 강도가 높아져 무산소운동 영역으로 들어가면 급증한다.
또 인체가 통증을 느끼거나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아 기분이 나빠지면 분비된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제어하기 위한 인체의 자기방어 호르몬이다. 격렬한 운동 후에도 뇌를 통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러너스 하이에 영향을 주는 물질로 내인성 카나비노이드가 주목받고 있다. 고통을 줄여주는 물질이란 점에서 엔도르핀과 유사한 물질인 내인성 카나비노이드는 마리화나의 활성성분(THC: tetrahydrocannabinol)과 유사하다.
내인성 카나비노이드에는 아난다마이드와 2-AG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마리화나를 피울 때, 운동할 때, 초콜릿을 먹었을 때와 동일하게 같은 수용체를 활성화한다.
이러한 내인성 카나비노이드는 척수에 있는 수용체를 활성화해 고통 신호가 뇌로 가는 것을 차단한다. 강력한 진통 효과와 함께 황홀한 기분을 선사한다.
게다가 혈액 뇌장벽을 쉽게 뚫고 지나가는 물질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러너스 하이와의 연관성이 더욱 깊다고 믿는 학자들도 있다.
현재까지 이 두 가지 물질은 통증을 완화하는 진통작용과 황홀한 기분을 선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한 러너스 하이는 과거 관절과 근육을 혹사하며 사냥하던 인간이 통증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진화된 산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가끔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 "정말 달릴 때마다 황홀한 느낌이 드나요?" "러너스 하이를 느끼려고 달리나요?"
달리다가 기분이 좋아지면서 정말 날아가는 기분이 드는 경우는 주 7회를 뛴다고 했을 때 3~4회 정도 드는 것 같다.
다리의 묵직함이나 피로감이 없어지고 나도 모르게 힘이 넘쳐 정서적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뛸 때마다 그런 강렬한 느낌이 와주길 기대하지 않는다.
러너스 하이의 순간도 즐겁지만, 뛰고 나서 오늘도 해냈다는 만족감과 땀 흘린 이후의 상쾌한 기분이 더 매력적인 것이 바로 달리기다.
달리기는 나와의 약속이고 나의 목표다.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로 인한 부수적인 기쁨이라고 보면 된다. 엘리트선수들 중에는 훈련 과정 중 전혀 러너스 하이를 못 느끼는 선수도 있다고 한다.
울트라 마라톤 100킬로 정도를 달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 닿겠지만, 달리는 순간은 어느 정도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다.
다만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으로 러너스 하이보다 훨씬 더 충만한 만족감을 얻는다.
러너스 하이는 생리적인 측면과 아울러 심리적인 영향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자기 만족감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즐길수록 러너스 하이를 느낄 확률은 높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한 목표다.
달리기로 인한 성취감은 무의미한 일상을 하루하루 깨어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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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혁우 (정형외과전문의, 의학박사, 스포츠의학 분과 전문의, 남정형외과 원장) |
아이스하키,
[남혁우 남정형외과 원장 / 정리 = 최기성 기자 gistar@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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