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대표 국민식품인 '라면'의 소비 트렌드에 변화가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외식 대신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올해 상반기 국내 라면시장은 사상 첫 1조1000억원대를 돌파했다. 품목별로는 오랜 시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신라면, 짜파게티, 안성탕면 등이 두 자릿 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견인했다. 이밖에 외출이나 여행 등의 야외활동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가정 내에서 끓여먹을 수 있는 봉지라면의 판매 비중이 늘었다. 인근 편의점이나 슈퍼마켓과 같은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온라인몰에서 라면을 다량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이례적인 특징으로 꼽힌다.
20일 닐슨코리아(대형마트 기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라면시장은 전년 동기(1조545억원)보다 7.2% 증가한 약 1조13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반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지난 2월부터 라면을 비롯한 간편식 수요가 빠르게 증가한 것이 시장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농심 관계자는 "2013년부터 7년간 연 2조원 초반대에 정체돼있던 라면 시장이 올 들어 코로나19로 반짝 특수를 누렸다"며 "이는 라면이 '위기에 강한 비상식량'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한가지 눈에 띄는 건 언택트(비대면) 소비가 자리잡으면서 온라인몰에서 라면을 주문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라면은 제품 특성상 주로 대형마트나 집 근처 편의점, 슈퍼마켓 등에서 구매가 이뤄졌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 비중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소비자들의 장보기 패턴이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유통 채널에도 변화가 생겼다. 농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자체 출고데이터 기준 소셜커머스, 오픈마켓 등에서 거둔 라면 매출은 약 4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오뚜기도 전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량이 같은 기간 2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스테디셀러 브랜드가 진가를 발휘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전례없는 혼란 속에 '안정'을 택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맛과 품질이 검증된 농심 신라면·짜파게티·안성탕면, 오뚜기 진라면 매운맛, 팔도 비빔면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세부적으로는 닐슨데이터 기준 판매 1위인 농심 신라면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2.4% 증가했고 2위 짜파게티는 23.2%, 3위 안성탕면은 34.9%의 신장률을 각각 기록했다.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 효과를 톡톡히 누렸던 농심 너구리도 판매량이 28.4%가량 늘었다. 농심 관계자는 "경기불황이나 각종 재해 등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면 소비자들은 위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신제품보다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은 인기 제품을 더 선호한다"며 "이에 회전율이 높은 신라면 등의 제조공장 5곳을 풀가동하고 생산품목을 조정하면서 늘어난 수요에 적극 대응했다"고 말했다.
용기면이 아닌 봉지면이 인기를 끈 것도 코로나19가 바꾼 소비 패턴 중 하나다. 최근 수년간 국내 라면시장에서 용기면 수요는 해마다 증가했다. 2016년 33.2%였던 매출 비중이 2017년 36.1%, 2018년 37.2%, 지난해 37.5%로 늘어난 데서 알 수 있다. 1인 가구가 늘고 편의점 이용이 보편화된 것이 용기면 판매를 견인했다. 하지만 올해는 재택 근무, 전국 초·중·고 개학 연기 등으로 외부 활동이 크게 줄면서 봉지면을 구입하는 '집콕족'이 늘었다. 2019년 말 62.5%였던 봉지면 비중이 6개월 사이 65.7%로 늘어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오뚜기도 자체 데이터 기준 올 상반기 봉지면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15% 늘었다고 밝혔다. 봉지면은 용기면보다 판매가격이 저렴한 데다 양이 더 많아 한끼 식사 대용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농심 관계자는 "이른바 '집쿡(집에서 요리)'이 일상화되면서 라면이 간식 개념에서 벗어나 하나의 요리로 자리잡게 됐다"고 말했다.
[심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