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43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오너 일가 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그룹 총수인 조양래 회장이 지난 6월 말 차남 조현범 사장을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하자 장녀 조희경 이사장이 한달만에 법원을 찾아 반기를 들었다. 조 이사장이 아버지를 대상으로 성년후견 개시심판을 청구했다는 소식에 침묵을 지키던 조 회장이 직접 불화설 진화에 나섰다.
31일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 그룹 회장(83)은 회사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48)에게 그룹 지분 전량을 매각한 배경과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54)의 성년후견 개시심판 청구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동안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려했던 조 회장은 주주들의 혼란과 직원들의 동요를 수습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자신 명의의 입장문을 냈다.
조 회장은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왔었고, 그동안 좋은 성과를 만들어 냈고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다"며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 이미 전부터 최대주주로 점 찍어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몇달 동안 가족간에 최대주주 지위를 두고 벌이는 여러 움직임에 대해서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자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로 조현범 사장에 주식 전량을 매각한 것"이라며 "갑작스럽게 결정을 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6월 26일 조 회장은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전량(23.59%)을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2400억여원에 매각했다. 이로 인해 조 사장은 지분율 42.9%로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사실상 그룹 경영의 후계자로 낙점됐다. 지분 10.82%를 보유한 차녀 조희원씨(53)가 중립을 선언하면서 장남 조현식 부회장(50)과 장녀 조희경 이사장의 행보에 이목이 쏠렸다
지분 매각 한 달여만인 지난 30일 조 이사장은 서울가정법원에 아버지 조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심판을 청구하며 반격에 나섰다. 성년후견이란 노령이나 질병, 장애 등 정신적 제약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돕는 제도다. 조 이사장 측은 입장문을 내고 "회장님이 건강한 상태로 자발적 의사 결정이 가능한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해 성년후견 개시심판 청구를 했다"며 "객관적 판단을 통해 회장님의 평소 신념이 지켜지고, 가족이나 회사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고 청구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조 회장은 조 이사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건강이상설을 불식시켰다. 그는 "매주 친구들과 골프도 즐기고 있고, 골프가 없는 날은 퍼스널트레이딩(PT)도 받고 하루에 4~5km 이상씩 걷기 운동도 하고 있다"며 "나이에 비해 정말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데 저의 첫째 딸이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조 회장은 그룹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딸에게 경영권을 주겠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 본적이 없다"며 "제 딸은 회사의 경영에 관여해 본적이 없고, 가정을 꾸리는 안사람으로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돈에 관한 문제라면 첫째 딸을 포함해 모든 자식들에게 이미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증여했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재단에 뜻이 있다면 이미 증여받은 본인 돈으로 하면 될것"이라고 덧붙였다.
차남의 손을 들어준 조 회장과 장녀가 정면 충돌했지만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조 부회장은 법무법인 원을 통해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주요주주로서 깊이 고민하고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차녀 조희원씨도 기존의 중립 입장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총수인 조 회장이 직접 나서 차남에게의 경영권 승계 의지를 밝히자 30일 상한가를 쳤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오히려 하락 반전했다. 3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가는 오전 장중 한때 1만7850원까지 상승했지만, 장 막판 상승폭을 모두 반납하고 전일 대비 3.05% 떨어진 1만4300원에 장을 마쳤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최근 한달새 개인투자자들은 600억원 이상 순매수하며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실제 표 대결이 벌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조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여를 약속하며 딸에 대한 걱정을 전했다.
[박윤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