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내년 건강보험 국고보조금으로 올해 대비 1조7000억원의 예산 증액을 기획재정부에 긴급공문을 통해 요구했다. MRI(자기공명영상장치) 등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는 '문재인케어'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지출 증가가 불가피한데 코로나19로 경제상황까지 어려워지자 서민들에게 부담되는 보험료 인상 대신 정부재정으로 '땜질'하려는 것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악화된 재정 투입이 많은데 복지를 확대를 내건 각종 정책들이 세금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7일 보건복지부가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기재부에 내년 건강보험 국고보조금으로 10조6267억원을 요구했다. 이는 올해 예산에 비해 1조7000억원이나 늘어난 액수다. 작년에도 역대 최대인 1조1000억원을 증액했는데 올해 그 이상을 요구한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와 정부에서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된다. 관련법에 따르면 국가는 매년 예산 범위에서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하도록 돼있다.
그간 국고보조금은 예상 수입액의 13% 수준에 머물다가 작년에 14%대로 올랐다. 이번에도 복지부 요청대로 증액된다면 15%까지 오르게 된다. 최근 10년래 최고 수준이다.
복지부는 야당 기재위 소속인 추경호 의원실에도 "가입자 및 공급자 모두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가입자 보험료 부담여력이 지속 낮아지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의료기관의 경영 지원 등을 위해 국고지원 확대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결국 세금으로 문재인 케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아울러 복지부는 기재부에도 이 같은 국고보조 증액 요청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기재부 측 관계자는 "부처간 서로 예산 협의사항에 대해 별도로 증액을 호소하는 공문을 보내는 건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며 "복지부가 급하긴 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 한국형 뉴딜예산을 비롯해 각종 코로나19사태 지원 등으로 나라곳간 사정이 빠듯한 가운데 각 부처 예산 지출구조조정도 진행중인 기재부는 아직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만약 보험료도 올리지 못하고 국고 지원도 증액되지 않는다면 문재인케어 속도조절은 불가피하다.
가입자 단체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고려해 '동결 아니면 인하'를 강력 주장중이다. 이에 대해 이중규 복지부 건강보험급여과장은 최근 한 여당의원 주최 토론회에서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겨 보험료 인상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장성인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보험료를 걷기 어려운 만큼 똑같이 세금도 걷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고지원을 이번에 조금 더 늘려 받는다 하더라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만큼 문재인 케어에 속도 조절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문재인 케어의 지속적 추진에 대한 입장을 여전히 고수 중이다. '2018년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따르면 문재인 케어 실시 이후 보장성은 63.8%로 전년 보다 1.1%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임기 내 보장률 70% 달성이라는 당초 목표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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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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