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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26일 정규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2020 신인선수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경기를 관람하는 김택진 대표(오른쪽). |
엔씨는 시총 20조원에 육박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10년 전 프로야구단을 창단할 때만해도 연 매출은 6000억원대에 불과했다. 2010년 12월 엔씨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9구단 창단의향서를 제출했다. 당시 KBO는 외형 확장이 절실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엔씨는 일반인들에겐 조금 낯선 기업이었다. '리니지'라는 히트작이 있지만, 게임은 10~20대 전유물로 인식됐던 때였다. 리니지는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다. MMORPG의 매력은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플레이 하는 데 있다. 온라인 관계 맺기다. 그리고 여기엔 좋은 장비를 통한 자기과시와 우월감 등이 내재됐다. 몰입 정도가 크고, 중독될 가능성 또한 높다. 또한 유저들의 아이템 구매는 엔씨의 주 수익원 중 하나다. 리니지가 사행성과 중독에 대한 비판을 받았던 이유다.
엔씨가 창단의향서를 내자 기존 구단들은 의구심을 내비쳤다. 엔씨가 투자의향서에 명시한 2009년 매출은 6300억원이었다. 매출 1조원에도 못미치는 회사가 매년 투자를 필요로 하는 프로야구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엔씨가 연고지로 창원을 정하자, 부산·경남 터줏대감인 롯데의 반발이 심했다.
기존 구단들의 주장에도 논리는 있다. 프로야구단 운영엔 최소 매년 2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당시 엔씨 연간 영업이익 10% 이상이 야구단 비용으로 드는 셈이다. 그리고 단기간에 급성장한 게임업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존재했다.
이때 김택진 엔씨 대표가 직접 나섰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기업문화에서 '오너'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 IT나 게임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직접 나서 KBO와 언론에 약속했다.
"엔씨소프트의 야구단 운영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재산만 갖고도 프로야구단을 100년은 할 수 있다"며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것으로 게임은 끝났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엔씨다이노스 구단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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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왼쪽 두번째)가 창단 승인 인증패를 펴보이며 웃고 있다. |
김택진 대표는 2011년 창단 기자회견에서 "초등학교 시절 만화 '거인의 꿈'을 보며 꿈을 키웠고 중학교 시절엔 빠른 볼을 잘 던지려고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고 커브볼 책을 구해 본 뒤 몇 달간 밤새 담벼락에서 혼자 피칭 연습을 하곤 했다. 학창시절 변화구 전문 구원투수 노릇도 했다. 변화구를 잘 던진 롯데 최동원 투수가 어릴 적 영웅이었다. 야구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나한테 야구는 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이자 삶의 지혜서다. 투수가 던지는 볼 하나하나에서 드라마를 느낄 수 있다. 야구 자체가 목적인 구단을 만들고 싶다.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는 구단을 만들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대표의 말 중에서 주목할 부분은 '야구 자체가 목적인 구단'이다. 엔씨 홈구장은 창원이다. 김택진 대표와는 연고가 없는 지역이다. 엔씨 마케팅 차원에서도 큰 매력은 없는 곳이다. 하지만 창원은 가장 열정적인 야구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어릴 적부터 야구선수 최동원을 동경하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김택진에게는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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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마산야구장에서 치른 마지막 홈경기 종료 행사에 참여한 김택진 대표. |
2013년 1군에 참여한 뒤 지난해까지 7년간 엔씨 승률은 0.520(499승 17무 460패)이다. 같은 기간 동안 엔씨 보다 높은 승률을 기록했던 팀은 10개 구단 중 두산과 키움 두 팀뿐이다. 또한 일곱 시즌 중 다섯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재무적 성과도 좋다. 엔씨다이노스는 지난해 매출 445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광고수입은 268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13억원으로, 전년도 적자에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엔씨다이노스 최대주주는 지분 100%를 보유한 엔씨소프트다.
투자 또한 과감했다. 양의지(4년 총액 125억원)와 박석민(4년 총액 96억원) 등 대형 자유계약선수(FA, Free Agent)를 최고 대우로 영입했다. 또한 창원시에 신규 야구장 창원엔씨파크도 건설했다. 창원엔씨파크는 국내 야구장 중에서 가장 관중 친화적인 구장으로 꼽힌다.
김택진 대표는 "야구 자체가 목적인 야구단을 만들겠다"는 목표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올해 코로나19로 메이저리그가 멈추자,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은 KBO를 생중계했다. ESPN 중계 최대 수혜자는 엔씨였다. 엔씨는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민들로부터 응원을 받게 됐다. 같은 약자(엔씨)를 쓰며, 노스캐롤라이나는 공룡화석으로 유명한데 엔씨 마스코트 또한 공룡이다. 덩달아 엔씨 대표 게임들의 미국내 인지도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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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신구장 창원엔씨파크에서 열린 첫 홈경기에 참석해 개막 선언을 한 김택진 대표. |
데이터 야구도 김택진 대표의 작품이다. 엔씨는 창단 준비 때부터 야구 데이터 분석가를 영입해 데이터팀을 구성했다. 엔씨만의 야구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전력분석 시스템 'D-LOCKER'도 개발했다. D-LOCKER는 10개 구단 선수의 영상, 기록, 트랙킹 데이터 및 데이터팀의 분석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기반 전력분석 시스템으로 엔씨소프트의 기술력이 총동원됐다. 또한 김택진 대표는 선수단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정보를 확인하고, 데이터를 연구할 수 있도록 선수단 전체에게 테블릿 PC도 선물했다. 엔씨다이노스는 또한 2014년부터 KBO 최초로 원정경기 시 선수 전원 1인1실 숙박을 실시하고 있다. 이 또한 김택진 대표가 동의했기에 가능했다.
엔씨 관계자는 "김택진 구단주는 창단부터 매년 정규시즌 개막 홈경기와 마지막 홈경기를 관람하고 있다"며 "개막 홈경기에서는 개막 선언을 맡아 엔씨팬들에게 직접 시즌 시작을 알리며, 마지막 홈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후 팬들과 함께 진행하는 하이파이브 행사 등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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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마지막 홈경기 종료 후 포스트시즌 진출 기념 행사에 참여한 팬들과 그라운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김택진 대표. |
엔씨다이노스를 창단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을 주는 구단'을 가치로 내세운 엔씨는 연고지인 창원의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올해 1월 기업의 얼굴인 로고(CI)를 교체하면서 이를 알리는데 야구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엔씨다이노스의 로고는 물론 창원엔씨파크 시설 곳곳에도 엔씨의 새로운 CI가 적용된 디자인 구현하고 있다. 이밖에 엔씨의 야구 매니지먼트게임 '프로야구H2' 모델로 팀의 간판스타인 양의지 선수를 활용하거나, 회사 게임들과 엔씨다이노스 응원을 연계한 이벤트 등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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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씨의 새로운 CI가 적용된 창원엔씨파크 정문 게이트. 게이트 위 `CHANGWON NC PARK` 엠블럼은 엔씨의 새로운 CI가 새겨진 홈플레이트를 중심으로 역동성을 강조한 디자인이 적용됐다. |
[정승환 재계·한상 전문기자 / 도움 = 정지규 경일대 스포츠학과 교수 겸 스포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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