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 무산 원인으로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영악화가 거론되는 가운데 항공업계에서는 저가항공사(LCC)들이 과당경쟁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내실을 다지기보다 외형 성장에만 급급했던 것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승객을 해외로 실어나르는 아웃바운드 영업에만 치중하면서 외국 항공사 점유율을 가져오는 대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기존 국적 항공사들의 점유율만 잠식, 항공업계 동반 부실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24일 국토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항공 등 대형항공사(FSC)와 제주항공 등 LCC들을 합한 국적 항공사의 국제선 여객 운송 점유율은 66.9%였다. 제주항공이 첫 국제선 운항을 시작한 2009년(65.6%)과 큰 차이가 없다. 같은 기간 LCC들의 국제선 여객 점유율이 0.5%에서 29.5%로 급증했지만 국적기 항공사들의 점유율은 높아지는 대신 대형항공사 점유율만 반토막이 난 것이다.
국적 항공사들끼리 한정된 점유율을 나눠가지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LCC의 수익형태는 비행거리가 짧고 취항도 자유로워 수요만 뒷받침된다면 수익을 내기 쉬운 특정 노선에 집중하는 형태로 단순화됐다. 일본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 전 LCC 들의 전체 국제선 노선 가운데 일본 노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했고, 에어서울의 경우 코로나19 이전까지도 국제선의 70%가 일본노선이었다.
LCC들의 영업행태 또한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아웃바운드' 영업이 전부이다시피 했다. 국외 승객을 유치하기 위해 현지에서 저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한류스타를 모델로 기용하는 등 일부 노력이 있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지금까지는 비행기를 띄우면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너도나도 LCC 산업에 쉽게 뛰어들었다"며 "항공산업이 그동안 계속 성장만 지속하면서 수익모델의 다각화나 다른 항공사, 외항사 등과의 차별성은 고려하지 않았던 게 항공업계를 부실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과도한 숫자의 LCC가 업계에 진입하면서 시장의 강도가 너무 강해 각각의 기업에 돌아가는 파이가 너무 작았다"며 "이런 구조가 기형적인 노선 운영에 치중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업계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과 사업다각화 등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동안 과당경쟁에 내몰렸던 LCC들이 M&A를 통해 사업 안정성을 개선하고 아웃바운드 위주의 사업모델을 벗어나 다양한 수익모델을 개발을 고심해야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해 정부와 항공업계가 관광 인프라를 함께 키워 외국인들의 국내 여행(인바운드) 수요를 키우고 항공정비(MRO)나 기내식 사업을 키우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허희영 교수는 "정부가 항공업계에 과도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기보다는 항공정비와 기내식 사업 등 다양한 수익모델을 유지하고 성장시킬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보다 LCC 역사가 긴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는 이미 여러 번의 항공업 구조조정을 거쳤다. 미국은 1978년 항공사 규제 완화 및 항공자유화를 통해 신규 항공사가 대거 생겼다. 1970년에서 1980년대 사이 100여 개의 신규 항공사가 생겼고, 이후 저가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팬암과 이스턴항공이 파산하는 등 항공사 줄도산이 이어졌다. 2005년에는 아메리칸항공과 US항공이 합병했고 2008년 미국 델타항공이 노스웨스트항공과 웨스턴에어라인을 인수하는 등 M&A를 통한 구조 개편도 활발히 이뤄졌다.
현재 미국의 항공업계는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3개의 FSC와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1개의 LCC가 공존하며 지역단위로 10여개 항공사가 경쟁을 벌이는 구조다. 유럽도 2003년 프랑스의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의 KLM이 합병했고 독일 루프트
황용식 교수는 "국내 항공시장은 결국 미국과 유럽의 경우처럼 규모가 큰 항공사들이 시장 지배력을 끌어올리는 구조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시장규모과 해외사례를 비교해본다면 FSC는 1~2곳, LCC는 3~5곳 정도로 재편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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