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 한 번 이상 우울증과 비슷한 정신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400만명에 달한다. 우울증 탓에 생기는 작업손실 비용도 6조5000억원에 이른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불린다. 정신과 의사 알렉산더 니쿨레스쿠는 우울증을 '희망이 없는 환경에서 자원을 보존하려는 생존본능'이라고 해석한다. 꼼짝하지 않음으로써 위험 상황을 피하려는 일종의 '동면'이나 마찬가지다.
감정 상태가 겨울처럼 냉랭해지면 몸의 신경물질이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우울증은 학습능력과 집중력, 활기와 의욕을 떨어뜨리고 잠자려는 욕구, 식욕과 성욕, 자신을 잘 돌보려는 기본적 생존 욕구를 걷어차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울증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우울증 치료로 항우울제 약물치료, 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광선치료, 자기자극치료 등이 있고 그중 항우울제 치료 효과가 가장 크다. 최근 들어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울증 치료에 운동치료가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운동은 모든 면에서 우울증과 반대다. 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은 '움직임 없음, 멈춤'인데, 달리기는 그 반대다. 뇌에 작용하는 방식도 정확히 반대다.
우울증은 뇌 연결 단절이자, 세포 재생 문제다. 비유하자면 뇌에 일종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달리기는 뇌에 스파크를 일으켜 잠겨 있던 자물쇠를 열어버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운동은 우울증 원인으로 꼽히는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 신경세포 성장인자 등 전전두엽 피질의 모든 화학물질을 조절한다.
항우울제처럼 한 가지만 선별해 공략하지 않고, 뇌 전체의 화학작용을 조절하여 균형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몸이 활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므로 뇌 줄기가 자극을 받아 말초로부터 중심적인 자극을 일으켜 활력, 의욕, 흥미, 에너지가 넘쳐나는 효과를 발휘한다.
◆약물과 운동 치료의 시너지 효과
미국 심리학자 제임스 블루멘솔은 우울증환자 156명을 대상으로 16주간 항우울제와 운동효과(걷기와 달리기)를 비교했다.
이를 통해 운동(걷기, 달리기)이 항우울제 졸로프트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혔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꾸준한 운동(걷기, 달리기)을 약물 치료와 병행하면 재발 가능성까지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006년 텍사스 사우스웨스틴 의과대학의 마드후카르 트리베디는 항우울제에 저항을 보였던 환자 17명을 12주간 운동을 시켰더니 17점 만점인 우울증 테스트에서 무려 10.4점을 얻으며 우울증세가 호전되었다는 놀라운 결과도 발표하였다.
이 두 연구 결과는 운동치료가 우울증 치료에 있어 약물치료만큼 효과를 나타냈고,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에도 좋은 효과를 기대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 하버드 의대 존 레이티 교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자신은 우울증과 ADHD(과잉행동장애) 초기 증상에 시달렸다. 그는 치료를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결과 우울증 치료는 물론 '뇌를 똑똑하게 만드는' 덤까지 얻게 됐다.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실험결과를 합쳐서 '운동화 신은 뇌'라는 단행본도 발간했고, 이 책은 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레이티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증이 삶에서도 뇌세포에서도 연결선이 부식된 상태라면, 운동은 그 연결선을 다시 설치하는 행위"라고 강조한다.
◆러너를 리드하는 우울증 환자의 놀라운 변화
2년 전 친한 정신과 선배님에게 우울증환자이며 허리디스크 환자인데 달리기가 가능하냐는 자문이 들어왔다.
환자를 진료해보니 디스크급성증상도 없고 다만 허리근육이 약한 상태라서 달릴 때 허리에 조금씩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내가 심한 목 디스크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여태껏 어떻게 운동량을 늘려가며 마라톤을 할 수 있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달리기의 운동효과를 설명했다.
일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달리기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환자분은 80킬로 가까이 되었던 육중한 몸에서 호리호리한 근육질의 서브3주자로 변모해 있었다.
약간 소극적이고 불안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달리기로 인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여러 러너들을 리드하며 앞장서 달리고 있었다.
실제로 우울증은 단지 우울감으로만 진단되지 않고 여러 가지 증상의 복합체로 진단된다. 그럼에도 현대 의학에서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 치료는 항우울제 복용이 가장 효과적으로 증명됐다.
항우울제 복용으로 증상이 호전돼 달리기를 병행할 수 있다면 치료와 재발 방지 측면에서 달리기는 그 어떤 치료보다도 효율적이라고 생각된다.
고려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 및 전공의를 수료했다. 대한 스포츠의학회 분과전문의, 고려대 외래교수, 성균관의대
아이스하키, 골프 등 운동 마니아였던 그는 목 디스크를 이겨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보란 듯이 목 디스크를 이겨냈다. 그 이후로 달리기에 빠져 지금은 철인 3종경기까지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남혁우 남정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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