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군. 바로 아래로 전남 영광군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고창에서 가장 유명한 건 선운사(禪雲寺), 그 다음이 수박이다.
이 곳에서 7년째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농부 유건주 씨(29). 그는 요즘 블랙망고수박에 푹 빠져 있다. 겉은 검은 빛을 띠고 속은 노란 수박이다. 유 씨는 지난해부터 블랙망고수박을 재배하면서 농사에 눈을 떴다. 이전에는 40년 이상 농사를 지어온 아버지를 돕는 정도였지만 작년부터 수박 농사는 전적으로 유 씨가 도맡고 있다.
"아버지는 도매 공판장에서 수박을 개당 2000~3000원 받고 팔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그보다 최소 2~3배 이상 비싸게 팔죠. 재배면적을 확대해 판매량도 작년보다 10배 늘었습니다. 이젠 수박농사에 관한한 아버지가 저를 전적으로 믿습니다." 그의 표정엔 미소와 자신감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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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고창군에서 블랙망고수박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농부 유건주 씨(왼쪽)가 농사 전반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는 이윤기 상하농원 상품사업부 과장과 함께 비닐하우스 안에서 어깨동무를 한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혁훈 기자] |
유 씨는 "수박 재배 방법부터 수확, 판로 확보 등 모든 분야에서 상하농원 도움을 받고 있다"며 "상하농원이 아니었으면 수박 농사를 지금처럼 키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농원은 유 씨가 생산한 수박을 자체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온라인 마켓에서도 팔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상하농원 내 카페에서는 유 씨 수박으로 만든 노란색 수박주스를 메뉴에 추가하기도 했다.
이 농장과 협업을 위해 이윤기 상하농원 상품사업부 과장은 수시로 유 씨를 찾는다. 이날도 주머니에서 꺼낸 측정기로 블랙망고수박 당도를 재더니 "우와! 당도가 12가 넘는다"며 "일반 수박은 보통 9~10이 나오는데 대단하다"며 본인 일처럼 기뻐했다. 이 과장은 "이젠 유건주 농부가 스스로 블랙망고수박을 다 판매할 수 있는 데도 상하농원쪽 물량은 따로 챙겨놓을 정도로 오히려 우리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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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고창군에 위치한 상하농원 입구에 있는 파머스 마켓에는 농산물을 공급한 인근 농민들의 사진이 벽면에 크게 걸려 있다. [정혁훈 기자] |
상하농원 안에는 각종 공방이 있어 고창 등 인근 지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직접 가공도 한다. 햄공방에선 각종 햄과 소시지를 직접 만들고, 과일공방에선 고창에서 유명한 복분자와 블루베리 잼과 과일청 등을 생산한다. 발효공방에선 된장과 고추장 등 각종 장류와 조리용 소금, 오일을 만들고, 빵과 과자류를 만드는 빵공방도 있다. 주변 농가 수확물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곳을 찾는 관람객들이 농촌과 교감할 수 있는 장치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어린이들은 유리온실과 텃밭정원에서 농사 체험을 하고, 작은 첨단 축사에서는 어린 젖소에 우유를 먹이는 것도 직접 해볼 수 있다. 각 공방에서는 제품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소시지와 빵, 동물쿠키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한식당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카페 등 다양한 먹거리 공간도 관람객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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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고창군에 위치한 상하농원은 기업과 농민의 상생을 추구하는 농촌형 테마파크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왼쪽부터 상하키친과 햄공방, 농원식당이다. 앞의 텃밭에서는 방문객들이 직접 농사를 체험할 수 있다. [정혁훈 기자] |
류영기 상하농원 대표는 "6차 산업을 구현하기 위해 고창에서 유명한 복분자를 계약재배를 통해 농가에서 받아 즙이나 잼으로 만들어 상하농원 브랜드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 대표는 "실제로 상하농원 자체에서 나오는 매출보다는 인근에서 나오는 농산물 가공과 유통 등에서 나오는 매출이 훨씬 크다"며 "테마파크 형태로 운영되면서 인근 농촌과 상생하며 농업을 6차 산업으로 키우는 곳은 전세계적으로도 여기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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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고창군에 위치한 상하농원은 유기농 목장도 갖추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축사에서는 어린이들이 어린 젖소에 우유를 먹이는 체험도 가능하다. 여기서 기르는 소들은 앞에 보이는 초지에서 자리는 풀을 먹는다. [정혁훈 기자] |
상하농원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 곳을 유기농 목장 터로 처음 잡은 건 김복용 선대 회장이다. 이어 김정완 현 회장이 상하농원 설립 계획을 세운 게 2008년이었으니 실제 개장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유기농 농축산물에 적절한 토양을 조성하는 데만 3년을 기다렸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농원내 수많은 건물의 작은 벽돌 모양 하나까지도 설치미술가 김범 작가가 일일이 챙겼다. 농원의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기업과 농촌간 상생모델 전략을 구체화하는 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돈이 되지도 않는 일에 10년 넘도록 1000억원 가까운 돈을 투자한 건 오너의 의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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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기 상하농원 대표가 농원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에 살던 류 대표는 가족과 함께 고창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정혁훈 기자] |
류 대표는 중요한 건 상하농원이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1500년대부터 고창 지역에서 생산해온 지주식 전통 김을 상하농원 브랜드로 개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고창에서 유명한 풍천장어를 상품화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올 여름엔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수영장도 새로 문을 열었다. 친환경을 모토로 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바닥엔 황토가 발라졌고, 수영장에서 넘친 물이 흘러 나갈 때 졸졸 시냇물 소리가 나게 고안했다. 올 겨울엔 스
류 대표는 "상하농원에서 상하(上下)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며 "기업과 농민, 직원, 방문객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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