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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시절 인류는 숲과 나무에 은신하며 열매를 먹고 사는 유인원과 같은 영장류였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600만 년 전, 혜성 충돌 혹은 기후 변화 같은 이유로 숲이 크게 줄어들었다. 유인원들을 자신들의 서식지가 사라지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광활한 초원을 건너며 먼 길을 이동했다. 네발로 오랜 시간 걸어야 했던 그들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두발로 걷기 시작했다.
보다 효과적으로 움직이고자 했던 인류의 조상은 4족 보행에서 2족 보행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인류의 시조 호모에렉투스의 뜻은 '자립형 인간'이란 뜻으로 화석에서 직립보행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인간, 뛰는 데 최적화된 몸으로 진화하다
숲에서 초원으로 내려와 두발로 선 인류의 조상은 다른 동물들보다 빠르지도 않고 힘도 세지 않았다. 하지만 200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의 유골을 분석해보면 두뇌의 용적이 커졌고, 턱과 이빨이 발달되어 있다.
두뇌가 커지려면 단백질이 필요하다. 턱과 이빨이 발달하면 고기를 먹기에 적합하다. 이는 그들이 육식을 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활과 화살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고작 2만 년 전이고, 창을 사용한 것은 불과 20만 년 전이다. 어떻게 그보다 훨씬 전에 살던 인류가 사냥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단서는 바로 인류의 몸에서 사라진 털에 있다. 인류의 시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하빌리스는 온몸이 지금의 유인원처럼 털로 가득 덮여 있었다.
진화를 거듭하면서 직립보행을 하게 되고 300만 년 전부터 체간을 덮고 있던 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과학자들은 짐작한다. 호모에렉투스는 털이 거의 없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점점 퇴화한 털은 결국 머리와 겨드랑이, 사타구니에만 남았다.
영국의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와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다니엘 리버만은 인간이 다른 유인원이나 포유류와 다르게 몸에 털이 없어진 대신 무수한 땀구멍이 존재했기 때문에 체온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영양이나 개, 치타, 고릴라 등 온몸이 털로 덥힌 동물들은 유일하게 폐와 호흡기를 통해 체온을 조절한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거리를 달리다가는 체내 온도가 과열되어 열사병에 빠지고 만다.
우리가 흔히 보는 강아지가 조금만 뛰어도 헉헉거리면서 혀를 내밀고 숨을 고르고 퍼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땀구멍과 털 없는 동물의 비밀
반면 무수한 땀구멍을 가진 인간은 지속적인 수분 배출을 통해 열을 손쉽게 발산한다. 털이 빠진 이 유인원은 다른 동물보다 빠르지 않지만, 땀이라는 쿨링시스템을 보유하여 체온을 조절하여 30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를 달리는 데 적합해졌다.
아프리카 사바나 같은 초원의 한낮 기온은 30도 이상으로 끓어오르는데, 이때 인류는 영양과 같은 초식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사냥을 시작하는 순간 동물은 무서운 스피드로 도망친다. 속도로는 그들을 따라잡지 못했던 우리 선조들을 떼를 지어 천천히 그들을 뒤쫓았다.
초식동물은 빠르게 도망가다 체내 온도가 오르기 때문에 쉬었다 도망가다를 반복하게 된다. 반면 털 없는 인류의 선조는 쉬지 않고 사냥감을 몰아가며 뛰어간다.
그런 식으로 10~1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추적하다 보면 고체온으로 탈진하여 쓰러져 죽어가는 먹잇감을 발견하게 되고 손쉽게 먹이를 습득한다.
인류의 후손 중에는 아직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냥하는 종족이 남아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 중 칼리하리 지역에 사는 부시맨, 멕시코 시에라 협곡에 사는 타라후마라족 모두 장거리 달리기를 이용한 사냥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사냥했고, 사냥을 위해 진화했다. 그중 달리기는 사냥을 위한 최고의 기술이었으며 유일한 생존 기술로 우리 몸속에 남았다. 우리가 달리는 것은 본능이자 숙명이었다. 실제로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전투력과 같은 에너지가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가 달린 역사는 200만 년이 훌쩍 넘었고 인간은 그동안 또다시 진화했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달리는 의미를 찾아서 뛴다. 몸과 정신이 우리가 '호모 러너스쿠스'였음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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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남혁우] |
고려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 및 전공의를 수료했다. 대한 스포츠의학회 분과전문의, 고려대 외래교수, 성균관의대
아이스하키, 골프 등 운동 마니아였던 그는 목 디스크를 이겨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보란 듯이 목 디스크를 이겨냈다. 그 이후로 달리기에 빠져 지금은 철인 3종경기까지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남혁우 남정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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