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사진출처 = 연합뉴스] |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관계자는 이날 "김 전 회장은 1년여간 투병생활을 했으며,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8월말 베트남 하노이 소재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청년사업가) 양성 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후 건강이 안 좋아져 통원 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오다 12월말부터 증세가 악화돼 장기 입원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GYBM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줄 것"을 유지(遺志)로 남겼다고 대우 관계자는 밝혔다.
김 전 회장은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3년 한성실업에 근무하면서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만 30세였던 1967년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무역업체였던 대우실업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급성장을 일궈냈다.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지사(호주 시드니)를 설립했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열며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 역할도 했다. '대우맨'을 전세계를 누비는 상사맨 이미지로 만든 것도 이때다.
1990년대에는 세계경영을 표방하며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 다국적 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다. 특히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와 한국기계(대우중공업),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오히려 해외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본인의 어록을 제목으로 한 책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를 맞으면서 대우그룹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 지사망,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의 고용인력을 갖고 있던 국내 최대기업 중 하나였던 대우그룹은 1999년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김 전 회장도 같은 해 해외도피를 선택하면서 대우그룹은 뿔뿔이 흩어져 공중분해됐다.
장례는 가족장이며,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김규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