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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 |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국내 벤처생태계의 현실에 대해 이 같이 지적하며 쓴소리부터 시작했다. 그는 "벤처생태계에 돈이 많이 유입되는 등 제2의 벤처붐을 조성하기 위한 환경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 상황을 두고 벤처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진짜 벤처붐이라면 과거 1차 벤처붐 때처럼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 연구원 등에서 근무하는 유능한 인재들이 너도나도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회장은 남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기술창업 중심으로 창업생태계가 재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배워야 할 벤처강국으로 이스라엘을 꼽지만, 한국은 사실 이스라엘보다 더 견고한 벤처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며 그 해법으로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진정한 상생'을 제시했다.
안 회장은 "이스라엘이 벤처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막대한 자본을 지닌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벤처기업들에게 자본과 시장을 제공한 데 있다"면서 "이스라엘에 유대인 생태계가 있다면 한국에는 유대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대기업 생태계가 존재한다. 대기업집단은 그 자체가 대기업이면서 세계무대에서 맹활약하는 계열사를 많이 갖고 있고, 이들 계열사까지 전부 대기업으로 치면 한국에 존재하는 대기업은 2만개가량 된다"며 '대기업 활용론'을 꺼내들었다.
오랜 세월동안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과 상생하겠다고 외쳐왔지만 지금까지 실행해온 것들은 무늬만 그럴듯한 가짜 상생이었으며, 이제부터라도 상대방을 인정하고 같이 성장하는 방향으로 가는 진정한 상생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자본은 물론 국내외 시장지배력과 해외 영업망, 네트워크를 보유한 대기업들이 핵심 기술과 혁신 정신으로 무장한 중소·벤처기업에게 유대인 역할을 해주면 뛰어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창업기업이 많이 등장하면서 창업 강국으로 거듭나고, 이는 다시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그는 지난 7월 발생한 일본의 수출규제로 정부가 8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업을 강조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상생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말했다.
안 회장은 구체적으로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 5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최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하는 것으로 사회혁신운동 등을 통해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과의 상생협력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행사개최를 꼽았다.
안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정부 관계자, 필요하다면 대통령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전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중소·벤처기업과의 상생의지를 표명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기업 총수가 계열사 사장에게 협력사와 상생하라고 지시해도 사장이나 실무진들은 협력사를 쥐어짜서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오너가 확고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선포해야만 임직원들도 상생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상생기획·실행조직인 '상설 라운드 테이블' 마련을 제안했다. 안 회장은 "대기업이 갑이고 중소벤처기업은 을이 아닌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만나고 의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실행방안은 수도권이나 수도권 인근에 대기업이 조성·건립하고, 중소·벤처업계와 공동 운영하는 비영리법인 형태의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설립이다. 대기업 인력과 관련 중소·벤처기업이 같은 건물에서 일하면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연구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에는 대기업들이 출자해서 최소 5000억원 규모로 중소·벤처기업 인수·합병(M&A) 펀드도 조성·운영하자는 게 그의 구상이다.
안 회장은 "지금은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중소·벤처기업 대표이사도 대기업 실무진과 만나는 게 매우 힘들다.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동등한 관계로 만나서 자연스럽게 협업하면서 아이디어 등을 나눈다면 벤처문화가 대기업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안 회장은 대기업이 지닌 수많은 특허 중 아주 핵심만 제외하고 나머지를 공개하는 것도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상생이며, 이는 다시 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보유 특허 중 95%가량은 만약을 대비해서 등록해놓은 것들로 대기업 먹거리에는 큰 도움이 안 되지만,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게는 잠자고 있는 이 특허들이 사업아이템이 될 수 있다"면서 대기업이 사용하지 않는 특허를 풀어주면 창업이 더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다섯 번째 방법으로는 정부의 역할을 꼽았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기업인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국민들이 기업에 긍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대기업이 나쁜 짓도 했지만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게 더 많은데 지금 사회분위기는 잘못만 꾸짖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기업인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만 보는 사회분위기가 짙어졌다"면서 "지금은 미국·중국 무역 분쟁, 한국·일본 무역 분쟁 등 대외 환경까지 안 좋은 상황에서 기업인들의 사기마저 떨어지고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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