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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방한한 질 가브라르 CCC(국가정상들의 셰프클럽) 회장 [사진제공 = 한국콘텐츠디자인연구소] |
'대통령 셰프'다.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 측근 그리고 국내외 귀빈들의 입에 들어갈 요리를 만드는 이들은 요리 실력 뿐 아니라 올곧은 성품을 갖춘 충직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셰프들이 뭉쳤다. 'CCC(Club des Chefs des Chefs)' 즉 '국가정상들의 셰프클럽'을 통해서다. '셰프계의 G20'이라 할 수 있는 CCC를 통해 대통령의 셰프들은 어디에서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충을 공유한다. 각자 모시는 분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에 관한 대외비적 정보도 나눈다.
특히 상대국 대통령 또는 국왕의 공식 방문 행사를 준비하는 셰프는 그 나라의 셰프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CCC의 상징 색깔인 푸른 색에서 영감을 받아 '블루라인'이라고 부르는 직통 전화를 통해서다. 단,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공유로 외부 발설은 금지다. 한 나라의 정상을 모신다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이들 간 신뢰는 매우 돈독해 보인다.
CCC 총회가 오는 10월 한국에서 열린다. 4개 대륙 25개국을 대표하는 국가 정상의 현직 셰프들이 다 모이는 자리다. 전 세계 유일무이한 모임으로, CCC 총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2013년 당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CCC 회원들의 모습 [사진제공 = CCC] |
ㅡ 국내에서는 CCC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타깝게도 한국 대통령의 셰프는 지금까지 CCC 멤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CCC가 소개 될 기회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셰프로 청와대 조리장을 맡고 있는 박대순 조리장이 CCC 멤버로 합류했다. 전 청와대 조리장인 천상현씨와 한국콘텐츠디자인연구소(KCDL)의 노력으로 CCC총회를 국내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행사 주최는 KCDL이 맡고, 한국지부 CCC 앰배서더로는 신디킴 이사가 최근 선임돼 국내 CCC 관련 일을 총괄한다.
ㅡ CCC 멤버가 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운가요.
"전혀 아닙니다. 현직 대통령의 셰프이기만 하면 됩니다(웃음). 각 나라별로 이미 검증받은 대통령의 셰프라면 약소국, 강대국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클럽이죠."
질 브라가르 회장은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CCC 모임에 가입하려면 반드시 현재 국가정상의 셰프로 재직 중이어야 한다. 재직이 끝난 전임자들은 아무리 오랜 기간 여러 명의 국가정상을 모셨다 해도 가입할 수 없다.
따라서 매우 제한적인 가입 조건이며 이 점이 바로 CCC를 더욱 특별한 성격의 친목 클럽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정치적 성격은 배제된 비영리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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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방한한 질 가브라르 CCC(국가정상들의 셰프클럽) 회장 [사진제공 = 한국콘텐츠디자인연구소] |
"국가당 딱 1명만이 가입할 수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수석 셰프인 '크리스티타 커머포드',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에서 일하는 '기욤 고메즈', 여왕의 요리사로 통하는 영국의 '마크 플래너건', 러시아의 크레뮬린 궁에서 일하는 '제롬 리가우드', 독일 수상의 셰프 '율리히 게르츠'는 물론 이스라엘, 이탈리아, 모로코, 중국, 인도, 룩셈부르크, 핀란드, 스페인,캐나다 등에서 가입한 국가 정상을 모시는 셰프 25명 정도로 구성돼 있고요. 이들은 한마디로 셰프계의 G20 멤버인 셈이죠."
ㅡ 구체적으로 CCC 총회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G20 정상회담과 달리, CCC에서는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셰프들은 모두 축제를 즐기듯 편안한 마음으로 각 나라에서 준비한 행사에 참여하는 게 일이죠(웃음). 항상 긴장 속에서 국가 행사를 치러야 하는 셰프들이 메뉴 걱정없이 편히 즐기면서 그들 스스로를 위해 마련한 유일한 행사라고 할 수 있어요. 일주일간의 기간 동안 비로소 CCC 셰프들이 주빈이 돼 본다고나 할까요?"
총회 기간 각국에서 온 셰프들은 자국 요리의 홍보대사가 된다. 고급 요리들의 레시피를 공유하고, 여러 단체에 자신들의 레시피를 기부한다.
특히 이들이 만든 요리로 갈라디너쇼 등을 열어 모은 기부금으로 또 다른 자선 활동을 펼친다. 예를 들어 2013년 뉴욕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대통령의 셰프들의 레시피로 200여명의 노숙자들에게 마치 왕과 왕비처럼 하루 식사를 대접했다.
오는 10월 열릴 한국 총회에서는 대통령 셰프들이 특별히 준비해 온 레시피로 갈라디너쇼를 열고 해당 수익금은 한국다문화재단중앙회에 후원금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 CCC회원들의 모습 [사진제공 : KDCL] |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임 레이건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뒤를 이어 CCC회원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했어요. 2012년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엘리제 궁으로 CCC 회원들을 초청해 세계 지도자들 간의 화합에 기여하는 셰프들을 격려했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역시 뉴욕의 유엔본부로 CCC 회원들을 초청했는데 25개국가 대통령의 셰프들이 참여하는 CCC 총회 개최 장소로 유엔본부보다 더 적합한 곳을 찾긴 어려울 것 같아요(웃음)"
ㅡ CCC설립자인 당신은 정작 요리사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 CCC를 만들게 됐나요.
"맞습니다. 저는 요리사도, 대통령의 셰프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셰프들을, 그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죠. 왜냐면 저는 전 세계 호텔 등에 납품하는 유니폼 회사를 운영하는데, 1977년 CCC 설립 당시 친분이 돈독한 유명 셰프들과 미식 모임을 열었어요. 이 때 대통령 관저와 왕실의 주방에서 묵묵히 일에만 집중해 온 요리 대가들을 직접 조우하게 됐는데 무척 기뻤죠. 그리고 그날 저를 더더욱 기쁘게 한 것은 모인 셰프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신들의 특별한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즉시 저는 다시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대통령 세프들 간 친목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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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안병훈 한국콘텐츠디자인연구소 대표와 질 브라가르 회장 [사진제공 : 한국콘텐츠디자인연구소] |
CCC 설립 초창기 멤버로는 엘리제 궁의 마르셀 르 세르보, 백악관의 헨리 할러, 스웨덴 국왕의 요리사 베르너 보쥴리, 덴마크 왕비의 요리사 젠스 페터, 콜벡 등이 있다.
ㅡ 대통령 셰프들만의 고충이 궁금합니다.
"이를 테면 세계 정상들의 식탁에서는 실수할 수 있는 권리는 아예 없다고 봐야 해요. 레스토랑에서야 문제가 생기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비스로 다른 요리를 가져다 드리면 되지만 대통령이 앉은 식탁이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죠. 실수를 만회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 이것이 굉장히 힘들다고 해요.1000명에서 많게는 4000명에 이르는 연회를 준비해야하는 스트레스도 큽니다. 연회 준비는 보통 초단위로 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고요. 이를 해결한 플랜 B,C도 대통령 셰프의 머릿 속에는 항상 들어 있어야 하죠."
그에 따르면 갑작스럽게 준비해야하는 대통령의 사적인 식사 자리야말로 대통령 셰프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최고로 높인다고 한다.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24시간 대기해야 할 때도 많다. 아무리 완벽한 솜씨와 창조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셰프라도 매일 매일 새로운 요리를 생각해 내는 일 역시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 [사진제공 : KCDL) |
"당연하죠. 대통령 셰프인데요(웃음). 대통령의 병명 등 건강과 관련해 주치의와 공유하고요. 대통령의 입맛은 누구보다 잘 알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요리는 무엇인지 말이에요. 그러나 대통령의 셰프로 일하는 동안 알게 된 내용은 국가 기밀로 외부 발설 금지입니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니까요. "
ㅡ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군요.
"CCC로부터의 발언 때문은 아니고요. 미국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그냥 브로컬리를 먹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다음날로 백악관 앞에 브로컬리 생산업체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시위를 하기도 하고요.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와인을 싫어한다는 발언으로 와인 생산자들과 등을 졌고, 엘리제궁 정찬 메뉴에서 치즈 코스를 없애버려 치즈 생산자들과도 사이가 나빠졌어요. 대통령이다보니 음식 관련 발언 하나하나도 정치적 주목을 받는 것이죠."
↑ CCC(국가정상들의 셰프클럽) 회원들의 모습 [사진제공 = CCC] |
"한국에서의 총회를 통해 아시아에서 CCC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국적이 달라도,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게 달라도 요리 하나로 화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봐왔거든요. 몇 년전 이스라엘에서 열린 총회였어요. 당시 만찬 준비 주방팀을 이스라엘인 50%, 팔레스타인 50%로 구성했죠. 그렇게 구성된 요리팀 모두가 똑같은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비록 정치적 분쟁 지역이지만 그 순간 만큼은 모두 하나가 됐었거든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 역시 커요. CCC 회원들
정치는 사람을 갈라놓지만, 맛있는 식탁은 사람을 하나로 모은다고 했던가. 오는 10월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통령 셰프들이 펼칠 미식의 향연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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