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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사진제공 = SK하이닉스] |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가 이석희 사장으로 교체되자 예상 밖이지만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얘기가 재계 안팎에서 나왔다.
SK하이닉스를 그룹 주력계열사로 성장시킨 박성욱 부회장의 유임이 유력했지만 메모리 반도체 하락국면에서 세대교체를 통한 위기 대응 차원에서 적절했다는 평가였다.
이 사장이 선임되자 SK하이닉스의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확대 가능성이 나타났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로 비메모리의 관심이 커진 탓도 있지만 이 사장의 과거 인텔 근무 경력 때문이었다. 인텔은 비메모리 사업 중심의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다.
2000년 처음 인텔에 입사한 그는 능력을 빠르게 인정받아 연구팀에 참여하게 됐다. 이후 최고 업적을 달성한 기술자에게 수여하는 '인텔 기술상'을 3회나 수상할 정도로 핵심인재로 거듭났다. 이 사장 선임으로 비메모리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업을 키우겠다는 의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취임 5개월이 지난 지금도 SK하이닉스의 비메모리 투자 방안은 없는 상태다. 정부는 차세대 주력 분야로 비메모리를 적극 육성한다는 비전을 밝히며 지원에 나서지만 SK하이닉스는 강점인 메모리에만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비메모리 외치는데 SK하이닉스는 '글쎄'
최근 국내 반도체 시장에서 화두는 단연 비메모리다. 국내 1위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가량을 투자하는 '반도체 비전'을 발표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약 13조원인데 이는 삼성전자 연간 R&D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는 이에 즉각 화답했다. 지난달 30일 삼성전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조원의 연구개발 예산과 전문인력 1만7000명 양성 등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 시장 점유율을 1.6%에서 10%대까지 끌어올리고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구체적 목표까지 세웠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이런 분위기에 동떨어져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까지 발을 넓혀 초격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 중 낸드 경쟁력을 키우기에도 벅찬데다 비메모리를 육성하기엔 기반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SK하이닉스 측은 "시스템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비중이 크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방향인 것도 인지한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해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D램과 낸드플래시로 나뉜다. SK하이닉스는 D램에서는 세계 2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낸드는 5위로 성적이 좋지 않다. 매출 역시 D램과 큰 차이를 보인다.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는 D램에서 5조3531억원의 매출을 올린 반면 낸드에서는 1조1553억원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비메모리에 투자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유리한 낸드플래시를 키우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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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김승한 기자] |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 중 96.1%가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 그 만큼 업황에 따라 수익 기복은 심해질 수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를 육성해 편중된 사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쏠림에 대한 우려는 이미 수차례 거론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전체 매출 중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부분인 것처럼, 특정 부문에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그 자체로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SK하이닉스가 비메모리 반도체를 육성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등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기술이 주도하는 미래 산업에서 시스템 반도체 등 비메모리 기술력은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300조원에 이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최근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도 시스템반도체 강화론에 힘을 실어준다. 지난해 4분기부터 D램 가격은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올 들어서는 국제 거래 가격이 거의 반토막 났다. 이는 D램이 주력 제품인 SK하이닉스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업황 악화로 지속되자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3분의 1까지 줄어들었다.
비메모리에 주력해야하는 이유는 시장 규모에서도 알 수 있다. 세계 비메모리 분야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전체 반도체 시장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는 30%에 불과하다. 30%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이 60% 점유하고 있지만, 70%의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3%로 미미한 수준이다.
아울러 비메모리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세가 전망되고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사업인 만큼 빠른 점유율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하나로 2000원 수익을 낼 때 시스템 반도체는 그의 10배를 벌 수 있는 만큼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라며 "최근 정부와 국내 반도체 회사가 비메모리에 집중해 적극 육성한다고 밝힌 만큼 중요한 사업으로 인식할 때"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김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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