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의 암반 물 주입에 의해 촉발됐다고 공식 결론을 내리면서 포항 지역에서 추진 중인 이산화탄소(CO₂) 포집저장 실증연구까지 좌초 위기에 놓이게 됐다. 지진 공포를 직접 겪은 포항시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소지중저장은 지열발전과 엄연히 다른 데다 실증연구는 소규모로 진행되는 만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초연구까지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탄소지중저장은 화력발전소, 자동차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액체 상태로 포집한 뒤 지층에 매립돼 있던 지하수, 석유 등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공극)에 주입, 저장하는 기술이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대기와 격리시켜 온실효과를 내지 않도록 땅 밑에 묻어 두는 것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저감할 수 있는 차세대 환경 기술로 꼽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산학연 연구진은 정부가 2011년부터 추진한 '코리아 탄소포집저장(CCS) 2020' 사업의 일환으로 탄소지중저장기술의 효용성과 안전성 검증을 위해 2017년 3월부터 3단계 실증사업에 들어갔다. 포항 북구 앞바다의 영일만과 남구 장기면의 장기분지 등 2곳에서 땅 밑에 소량의 이산화탄소 포집 액체를 주입하면서 압력 등을 정밀 분석하는 실험을 수행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2017년 11월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뒤 이 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 실증시설의 수리 자극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자, 시민들은 지중저장 실증 역시 지층에 자극을 줄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공극에 포집액을 주입하는 과정이 지열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물을 흘려 암반의 틈을 터주는 '수리(水理)자극'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결국 실증사업은 포항시의 요청으로 2017년 12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정부 조사연구단까지 포항지진의 지열발전 연관성을 공식 인정하면서 사업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리자극과 탄소지중저장은 액체 주입 압력과 깊이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선 탄소지중저장은 길을 트기 위해 물을 주입하는 지열발전과 달리, 빈 공간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탄소 포집액이 틈을 만들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낮은 압력에서 천천히 주입돼야 한다. 실증시설의 겨우 주입량도 매우 적다. 영일만 지중저장 실증사업의 연구책임자인 권이균 공주대 교수는 "연간 최대 5000t을 주입할 수 있는 실험시설로 사업기간인 2년간 쉬지 않고 주입해도 총 주입량이 1만 t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영일만 실증시설에서 3개월간 총 100t을 주입해 실험 데이터를 얻었다. 장기분지의 경우 시추 도중 멈춰 실험을 시작도 못했다.
앞서 영국 더럼대 연구진이 2017년 7월 국제학술지 '어스-사이언스 리뷰'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탄소지중저장 시설에서 유발된 지진은 규모가 모두 2.0 내외다. 주입된 포집액이 100만t 이하인 경우는 지진 규모가 1.0에도 못미치는 미소지진에 불과했다. 또 포항 지열발전소의 경우 지열정이 최대 4340m까지 시추해 내려갔지만 대부분 탄소지중저장은 지하 2000m 내외의 얕은 층에서 이뤄진다. 특히 포항의 탄소지중저장 실증시설은 실제 저장시설의 200분의 1 규모인 데다 지하 800~1100m 수준에서 액체 주입을 한다. 지진학자인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이렇게 얕은 지층에서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잘못된 이해와 과도한 공포심으로 미래를 위한 기초연구까지 막아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한지질학회 소속의 한 전문가는 "지열발전이든 탄소지중저장이든 모든 지하 연구시설이 '지진 유발 시설'인 것처럼 호도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포항지진의 경우는 정부가 제대로 지질 조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알려지지 않은 단층 바로 위에 지열발전소 실증시설을 지으면서 벌어진 비극이라는 것이다. 정부조사연구단에 따르면 포항 지열발전소를 구성하는 2개의 지열정(땅속에 물을 넣기 위해 매립한 기다란 관) 중 지하 4340m 깊이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파이프인 2번 지열정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면과 지하 3800m 지점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코리아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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