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 필수 치료재료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잇달아 우리나라 시장에 공급을 중단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대표 안기종)는 "미국 고어(Gore)사가 선천성 심장병 수술시 필수 치료재료인 소아용 인조혈관을 우리나라에 2017년 9월부터 공급 중단하고 최근에는 재고가 떨어져 해당 아이들이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며 "환아들의 생명을 사지(死地)로 몰고 있는 고어사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규탄한다"고 8일 밝혔다.
아웃도어 의류 소재 고어텍스(Gore-tex)로 유명한 미국 고어사는 2017년 9월 건강보험 상한 가격이 낮아 이윤이 적고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인증을 더 이상 연장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고어코리아의 메디컬사업부 철수에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까지 취소시키며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필수적인 인조혈관의 공급을 중단시켰다. 더 나아가 고어는 한국에는 앞으로 인조혈관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많이 했던 세종병원·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부산대병원·경북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은 고어사가 의료기기의 공급을 재개할 때까지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인조혈관'사재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2019년 3월 인조혈관 재고가 소진되기 시작하면서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의 수술에 빨간불이 켜졌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인조혈관 재고가 소진되면서 지난 2월부터 단심실 아이들의 폰탄수술(Fontan's operation)이 무기한 연기됐다. 고어사가 이윤을 앞세워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의 생명을 사지로 몰고가고 있는 셈이다.
고어사는 2017년 9월 인조혈관 공급을 중단하자 보건복지부는 희귀질환 수술에 꼭 필요한 희소·필수 치료재료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상한 가격을 인상해 주는 별도 관리 기준까지 마련해 2018년 9월 고시했다. 그러나 고어사는 현재까지도 인조혈관의 공급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 2월 대체 수입업체를 선정, 고어사가 취소한 인조혈관의 수입허가를 완료해 고어사가 인조혈관만 공급하면 곧바로 건강보험 적용된 가격으로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고어사가 공급하는 인조혈관은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의 수술에 대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치료재료로, 매년 폰탄수술을 받는 약 40여명의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에게 고어의 인조혈관은 생명줄과도 같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고어사에 신속한 인조혈관의 공급 재개를 촉구한다"며 "만일 인조혈관의 공급 재개를 지체하거나 거부할 경우에는 전 세계 환자단체와 연대해 고어사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인조혈관 공급 중단 횡포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또 "보건복지부·식약처, 국회는 고어사의 인조혈관 등과 같이 대체제가 없으면서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치료재료를 공급 독점하는 제조사가 공급 거부나 중단의 방법으로 환자의 접근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입법적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3월에는 간암 환자에게 '경동맥화학색전술'(TACE) 시행시 항암제와 혼합해 사용되는 조영제인 '리피오돌'을 전세계 독점 공급하는 게르베코리아가 우리나라에 공급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를 통해 약값을 대폭 인상했다. 이처럼 독점 의약품, 치료재료, 의료기기 회사의 건강보험 상한 가격에 대한 불만과 인상 방법으로 환자 생명을 볼모로 공급 중단하는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는 신속히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는 "고어사가 인조혈관의 건강보험 상한 가격에 불만이 있거나 GMP 인증이 싫다는 이유로 이번 인조혈관 공급부족 사태와 관련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선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암시민연대, 대한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