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수술로 맹장을 제거하면 파킨슨병에 걸릴 위험이 19~25% 정도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는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원인 단백질이 위장에서 발생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로 향후 파킨슨병 발병을 억제하거나 새로운 치료법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 밴안델연구소와 스웨덴 룬드대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168만명의 스웨덴 의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65세 이후에 파킨슨병에 걸린 사람의 비율은 1%로 나타났는데 맹장을 절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파킨슨병에 걸린 비율이 20%가까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 최신호에 게재됐다.
대장 끝에 달려있는 '맹장'은 염증이 생겨 잘라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맹장을 잘라내는 '맹장수술'은 흔하고 간편한 수술이 됐다. 맹장은 불필요한 기관으로 염증이 생기면 잘라내는 기관으로 알려져왔다. 쓸모없는 기관으로 알려졌던 맹장이 파킨슨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은 10여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서는 '알파 시누클레인'이라는 단백질이 잘못 접힌 형태가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다. 알파 시누클레인 단백질의 기능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덩어리로 뭉치면서 뇌 신경세포를 파괴해 파킨슨병의 증상인 떨림, 경직 등을 일으킨다고 보고돼 왔다. 그런데 파킨슨병 환자들은 변비와 같은 소화관 질병이 자주 나타난다는 일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또한 과도한 위산이 분비되는 만성 십이지장 궤양 환자의 경우 위산 분비에 관여하는 위 신경을 절단하는 '미주신경절단술(vagotomy)'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 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파킨슨병에 걸릴 위험이 낮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학술지 사이언스는 "헤이코 브랙이라는 신경과학자가 10여년 전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씨앗이 소화관을 벗어나 뇌에 도달한다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168만명의 스웨덴인의 의료기록을 분석했다. 52년간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일반인이 맹장수술을 하면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이 19% 줄었다는 결과를 내놨다. 특히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맹장수술을 할 경우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은 25%나 더 떨어졌다. 파킨슨병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더 흔하게 발견되곤 하는데 이는 살충제에 대한 노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800명의 파킨슨병 환자를 조사한 결과 파킨슨병 진단을 받기 20년 전에 맹장수술을 받은 환자는 파킨슨병 발병을 3.6년 가량 지연되는 것을 확인했다. 파킨슨병에 걸리기 직전이나, 걸린 뒤에 맹장을 제거한 환자의 경우에는 파킨슨병의 진행이 늦춰지는 효과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이 맹장 안을 조사한 결과 건강한 사람에게서도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알파 시누클레인 단백질 덩어리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누구나 잘못된 알파 시누클레인 단백질 덩어리를 맹장에 갖고 있었다"며 "다만 이것이 뇌로 올라갈 때만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정상 알파 시누클레인 단백질을 맹장과 비슷한 환경에 넣자 덩어리를 형성하기 좋은 형태로 변했다는 점이다. 맹장은 파킨슨병의 원인이 되는 비정상 알파 시누클레인 단백질을 제조하는 공장이었던 셈이다.
이번 연구는 파킨슨병의 발병을 늦추거나 발병 확률을 떨어트릴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연구진은 파킨슨병 발병을 막기 위해 맹장을 고의적으로 제거하는 것
[원호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