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대신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에서 잠자는 사람들을 가리켜 '맥난민(McRefugees)'이라 부른다. 최근 이들의 급증이 세계적 문제가 되고 있다.[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
◆ 세계적 문제로 떠오른 '주거 난민'
감당할 수 없는 주택 가격에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현상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골칫거리다. 최근 홍콩에서는 집 대신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 잠자는 시민들을 가리켜 '맥난민(McRefugees)'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국제청년회의소가 지난 6월과 7월 홍콩 시내 110개 맥도날드 매장을 조사한 결과 맥난민 수는 334명에 달했다. 이는 5년 새 6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들 중 과반수가 값비싼 주택 구입 비용 및 관리비 압박 때문에 집을 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은 평(3.3㎡)당 아파트 가격이 1억 원을 넘어설 정도로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 중 하나다.
뉴질랜드 역시 살인적인 집값 상승에 국민들이 자동차, 텐트, 창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뉴질랜드의 집값은 지난 10년여 새 57% 상승했으며 전체 인구 450만여명의 1%에 해당하는 약 4만명이 홈리스인 것으로 추산됐다. 4만명이라는 수치는 OECD 평균(0.2% 내외)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 '맥난민' 전초전?…한국도 골머리
우리나라가 아직 이들 나라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역시 24시간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밤을 보내는 노숙자나 가출 청소년, 일용직 노동자 등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일자리나 잠자리가 마땅치 않아 24시간 카페나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에서 햄버거나 콜라 한 잔을 시켜 놓고 하룻밤을 버틴다.
서울 강북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파트타이머로 근무 중인 정 모씨(22)는 "24시간으로 운영되다 보니 노숙자분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라며 "새벽에 청소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가 몰래 누워 계신 걸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손님들이 컴플레인을 걸어 정중히 나가 달라고 안내한 적이 많다"라면서 "불응할 경우 경찰에 인계한 적도 왕왕 있다"라고 밝혔다.
서울 노원구에서 패스트푸드점 매니저로 근무 중인 김 모씨(27) 역시 "노숙자나 가출 청소년 같은 경우 행색으로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시키고 밤새 자리를 차지하니 뭐라고 하기도 난감하다"라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김씨는 "노숙자가 어디서 매장 컵을 들고 와 올려 두고 있기도 한다"라며 "조용히 잠만 자고 갈 경우 매장 측에서 법적으로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주위 손님들도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대학생 이모씨(25)는 "새벽 늦게 배가 고파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햄버거를 먹는데 옆을 보니 노숙자가 대자로 누워 있었다"라면서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냄새가 너무 심해 결국 자리를 옮겼다"라고 말했다.
◆ 이혼, 실직 등으로 거주지 없이 떠도는 노숙인들
비가 내리던 지난 20일 새벽, 서울 중구의 한 패스트푸드점 근처 계단에 누워있는 노숙자에게 말을 건네자 "오늘은 돈이 없어 밖에서 자고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스를 바닥에 깔고 누워 있던 50대 남성 노숙자는 "평소 새벽 시간대에 사람도 별로 없고 콜라 하나면 실내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종종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숙을 하다 보면 자리 싸움이나 시비가 붙어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내에 있으면 안전하다"라며 "몸 하나 누일 곳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지난해 발표한 '2017년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10월 기준 전국 노숙인 수는 1만1340여명에 달한다. 이들이 안정된 주거 공간 없이 떠돌게 된 이유는 질병, 이혼, 실직 등의 이유였다. 경제적 결핍으로 인한 노숙이 대다수였는데 이들은 소득 지원과 주거 지원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 맥난민 증가 막기 위해 법안 마련 필요
전문가들은 치솟는 집값에 한정된 주택수가 우리나라 국민을 맥난민으로 내몰고 있다며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병우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홍콩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맥난민 발생의 주된 원인은 '집값 상승'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에서는 대규모 주택이 돈이 되는데 소규모 주택은 돈이 안되니 국가나 지자체에서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라며 "세금이 부족한 지자체가 소규모 실용 주택을 짓지 못하니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가격이 상승한다. 지자체에서는 또다시 복지에 투자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맥난민 발생률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노인층에서 이미 이와 같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라며 "은퇴 후 적금을 깨고 버티다가 결국 집에서 나오고 고시원으로 갔다가 그 돈도 없어서 결국 선택할 것이 맥도날드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젊은 층에게는 초기 단계지만 앞으로 이런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라며 "청년 실업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현재 실업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잠재적 맥난민이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임 교수
[디지털뉴스국 김수연 인턴기자 / 채민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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