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모(65)씨는 몇년 전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기억력 저하로 병원을 찾았다. 그는 주변 도움없이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고 최근 사업도 잘 유지된다고 말했다. 당일에도 직접 차를 운전해 병원을 방문했다. 인지기능 검사, 혈액검사, 뇌영상 등에서도 이상 소견을 보이지 않았고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혈관성 위험인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우울한 정서도 없이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기억감퇴를 매우 걱정했지만, 인지기능검사에서 이상 증상이 발견되지 않아 별다른 치료없이 지냈다. 그러나 몇 년 후 기억력 저하가 더 심해지자 가족들의 권고로 병원을 재방문했고 정상이던 그는 알츠하이머병 판정을 받게 됐다.
지난해 국내 치매 환자는 72만명을 넘어섰다. 객관적 인지검사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정상과 치매의 중간 단계)로 분류된다. 이 중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 경도인지장애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 치매로 분류된다. 이전에는 객관적 인지검사에서 문제가 없는 경우 모두 정상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김씨처럼 객관적 검사에서 이상없이 주관적 기억감퇴만을 호소하는 경우에도 치매의 한 종류인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상일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알츠하이머병은 인지능력이 사라지는 치매 중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이 병에 걸리면 신경세포가 변성되고 뇌 조직에 이상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여 뇌의 기능을 저해한다. 일반적인 기억감퇴는 정상 노화로 인해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알츠하이머성 주관적 기억감퇴는 이 같은 이상 단백질의 침착으로 나타난다.
단 주관적 기억감퇴를 호소해도 객관적 기억감퇴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뇌의 신경성 보상효과 때문이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부분을 조금 더 집중하거나 개인적인 노력 등을 통해서 보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관적 기억감퇴를 느끼고 걱정하지만 객관적 기억감퇴 지표인 인지기능검사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주관적 기억감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상 단백질의 침착 외에도 우울, 불안, 연령, 성별, 교육 수준, 혈관성 위험인자, 아포지단백 E ε4 등이 있다. 이들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 인자이기도 하다. 우울이나 불안은 주관적 기억감퇴에 특히 영향을 미치고 나이가 들수록, 남성보다 여성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또 교육수준이 낮거나 혈관성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에도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높아진다. 아포지단백 E ε4는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인 위험 유전자이다. 이 밖에도 치매가 진행된 경우 오히려 주관적 기억감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자각이 없는 질병인식불능증(Anosognosia) 상태도 영향을 미친다.
치매 치료에 있어서 주관적 기억감퇴가 관심을 받는 것은 증상을 완화시키고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는 약물 외에 확실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다.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욱 교수는 "현재까지 밝혀진 약물 또는 비약물치료법은 가능한 하루라도 빨리 치료할수록 치료효과가 좋다"며 "이전에는 정상으로 알려진 주관적 기억감퇴 단계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발견하면 알츠하이머병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치매는 예방과 정기 검진을 통한 조기발견이 중요하다. 치매 예방법으로는 우울증 관리와 체중 및 식이관리, 금연과 과음을 피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활동을 통해 친밀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신활동을 활발히 하면 치매 위험도가 줄어드는데, 특히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만들면 도움이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지능력을 키우고 지속적인 두뇌활동을 한다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김지욱 교수는 "주관적 기억감퇴가 있다고 모두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며 "주관적 기억감퇴의 개념, 여러 영향 인자, 정서 상태, 개인 성격 특성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해석에 주의를 해야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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