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청소기 하나로 생활가전 시장을 평정하며 '여성 벤처'의 상징으로 꼽혔던 한경희생활과학가 20일 법원의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했다. 지난해 5월 경영난 끝에 법원 문턱을 두드린 지 불과 10개월 만이다.
서울회생법원 회생12부(부장판사 김상규)는 이날 한경희생활과학의 기업 회생절차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10개월 만이다.
재판부는 "사측이 원활히 경영활동을 수행하면서 빚을 변제하는 등 회생계획을 원활히 진행해 조기에 종결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법원 주도 아래 과감히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적자에서 벗어나 수익을 올린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사측은 앞으로 정상적으로 경영활동을 수행하면서 남은 채무를 갚아나갈 계획이다.
한경희 대표(54)는 1999년 스팀청소기로 생활 가전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평범한 공무원으로 '워킹맘' 생활을 하면서 떠올린 아이디어는 손걸레질의 고단함에 시달리던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스팀청소기는 물론 후속 제품인 스팀다리미까지 집집마다 '국민 가전제품'이 됐다. 2005년에는 창립 11년 만에 매출 1000억원 진입을 눈 앞에 두면서 '여성벤처업계 신화' '성공한 1세대 여성 최고경영자'로 불렸다.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등 해외 언론이 선정한 주목할 만한 여성 기업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화장품, 음식물 처리기, 전기 프라이팬 등 이후 출시한 제품들이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백화점과 홈쇼핑 등에 과도하게 투자한 것도 자금난을 앞당겼다. 2014년에는 당시 유행했던 탄산수 제조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송사에 휘말려 타격을 입는 등 7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어 2015년에는 300억원대 순손실을 기록하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IBK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은 2016년 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골자로 한 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에는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한 대표가 회사채를 발행한 뒤 8억여원을 가로챘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검찰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지만, 한 대표와 회사가 입은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컸다.
한 대표는 "속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돈을 갚으려 했지만 고소인이 일방적으로 거부한 채 악의적으로 고소했다"며 "너무나 억울하고 부당한 상황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3월 출범한 국내 최초 도산전문 법원인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하고 무선청소기, 다리미 등 기존 주력 제품에 집중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최근에는 듀얼무선 진공청소기(한경희 타히탄)와 스마트포트(한경희 스마트포트) 등을 출시했다. 경영난에도 고객 서비스 향상과 신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이 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 게 한 대표
한 대표는 "재판부가 강력한 회생의지를 갖고 회생절차를 밟아 성실히 채무 상환을 진행한 점을 고려해 주신 것 같다"며 "경영정상화를 위해 전력투구해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경희생활과학을 믿어주신 채권단과 고객들에게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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