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갤럭시폰에 장착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총괄했던 이인종 전 무선사업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구글의 사물인터넷(IoT)부문을 맡기로 했다.
이인종 전 부사장은 12일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에서 "오는 20일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구글 본사로 출근한다"며 "구글에서 EIR(Entrepreneur-In-Residence, 사내기업가)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줬는데 부사장 직급으로 일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알아서 하고 싶은 사업을 찾아서 해보라는 자리인데, IoT를 총괄하는 일을 할 생각"이라며 "구글 클라우드부터 커넥티드카, 구글홈, 네스트 등 구글내에 있는 다양한 자산들을 하나로 꿰는 일을 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인종 전 부사장은 하드웨어는 강했지만 소프트웨어는 약하다는 평을 들었던 삼성전자를 확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프트웨어분야 총괄실무를 맡아 보안플랫폼 '녹스'로 미국 백악관까지 뚫었을 정도로 인정받았고, 모바일결제서비스인 '삼성페이'를 전세계에서 사용가능한 서비스로 만들었고, 인공지능(AI) 플랫폼 '빅스비' 출시 6개월만에 20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이 전 부사장은 "지난 7년간 삼성에서의 경험은 모든 것이 도전적이었으며 끝까지 피를 마르게 하는 작업이었다"며 치열했던 기업문화를 돌이켜보기도 했다. 그는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아야했던 미국에 있는 가족과 이제는 시간을 갖고 싶다며 삼성을 떠나는 이유를 넌지치 내비쳤다. 한국으로 떠날때 고등학생이었던 딸이 어느덧 대학졸업하고 미군에 자원입대했는데 이라크로 배치됐다는 소식에 많이 놀랐다고 한다.
잠깐 한국에 들어온 이인종 삼성전자 전 부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5일이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최고기술책임자(CTO)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쉬고 있던 그와는 지난 연말부터 연락해오다가 모처럼 만났다.
인터뷰는 공교롭게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판결이 한참 진행중이던 오후 2시반에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스를 계속 확인하던 그는 3시10분쯤 집행유예 소식이 전해지자, 환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 다행이다"고 연거푸 말했다.
이 부회장과는 B2B(기업간거래)사업부터 녹스, 삼성페이를 놓고 수많은 내부회의와 외부 미팅을 함께 했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얘기로도 이어졌다.
기존 삼성에서 볼 수 없었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의 성공스토리, 그리고 개발에서부터 출시까지 내부에서 이뤄졌던 긴박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뒤 몇차례 전화통화와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내용.
▷ 미국에 오래살다가 삼성에 입사했다. 기업문화가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삼성에 오기 전까지 인생의 절반을 미국에서 살았다. 빙빙 돌려서 말하기보다는 직설적인 표현을 쓰는데 익숙하다. 빨리 의사결정하려면 정확한 의사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난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일부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신선하게 봐줬던 것 같다. 다른 의견도 많이 말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소통했다.
▷ '녹스'에 이은 '삼성페이'의 성공은 삼성의 소프트웨어가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
=당시 고동진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이 삼성페이 미션을 맡으면서 시작하게 됐다. 그전에 녹스를 하면서 B2B 총괄을 했었지만 삼성페이는 삼성이 종전에 만나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상대해야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수직적인 조직의 한계가 있었다. 영업은 영업만, 개발은 개발만 해왔기 때문에 영업과 사업 전체를 내다보면서 협상 전체를 볼수 있는 사람이 부족한 편이었다. 삼성페이 개발팀의 80%이상이 B2B 개발과 영업을 했던 사람들로 채워졌다.
▷ 삼성이 루프페이(모바일 결제솔루션 회사)를 인수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애플페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삼성으로서는 대항마가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이 이었다. 루프페이라는 회사는 계속 봐오면서 인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삼성페이 미션이 먼저 시작됐다. 인수하더라도 삼성페이와 합치고 기술개발까지 완료해 6개월내에 출시해야하는 프로젝트였다. 사실 루프페이 기술만으로는 삼성페이를 만들 수 없다. 루프페이 기술은 신호를 마그네틱 웨이브(자석성질의 파동)로 변화시켜서 단말기에 읽히는 기술이다. 삼성페이는 여기에 보안기술을 얹히고, 서비스를 금융회사까지 연결시키는 임무를 갖고 있다. 루프페이는 전체 서비스에서 15~20%정도의 기술을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 6개월만에 출시하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미국은 카드사가 따로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뒤에 있는 은행과는 새로 다 계약해야한다. 주요 은행들과 해야하는 계약만해도 살인적으로 많았다. (주로 제조업체들을 상대했던) 삼성전자가 은행과 업무상 계약한다는 게 낯선 작업이었다.
▷ 마지막까지 변수가 많았을 것 같다.
=기존 제조업 관행과는 많이 달랐다. 삼성페이를 처음으로 장착한 갤럭시노트5 뉴욕 출시 행사 당일 새벽까지도 은행들과 협상이 끝나질 않았을 정도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상문제나 특허권 등과 관련한 이슈에 대한 협상조건을 조율하는게 어려웠다. 새벽 1시, 2시쯤에 신종균 대표가 파자마바람으로 호텔방으로 불러모아 재무팀과 법률팀변호사에 컨퍼런스 회의를 열어 문구 조율하여 최종 계약하고, 그날 런칭행사를 할 수 있었다. 막판까지 피를 말리는 프로젝트였다.
▷ 삼성페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전국민의 20%가 삼성페이를 쓰고 있다. 결제할때 카드보다 갤럭시폰을 사용하는게 익숙해지고 있는 과정이다. 사실 삼성페이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꾸는것이라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침투속도가) 빨랐다. 금융앱중에서 가장 많이 쓰지 않나. 해외에서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올라오고 있고, 러시아도 많이 쓴다. MST(마그네틱 보안전송) 기술 적용이 잘 안되는 유럽에서 견제가 좀 심하다.
▷ 삼성이 휴대폰을 비롯한 하드웨어에서는 전세계 1위를 하면서도, 정작 소프트웨어분야에서 부진했다.
=한국기업이 소프트웨어로 뭔가해본다는거, 특히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이 몇개 안된다. 라인 정도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전세계라기보다는) 아시아 정도다.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은 녹스와 삼성페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삼성이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삼성에는 인재가 많은 편인데, 그들을 활용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문화 바꾸는게 힘든 도전이었다. 녹스는 사용자만 매년 1000만명씩 늘어난다. 삼성에게는 불모지였던 B2B분야에서 삼성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처음 해본 것이었는데 완전히 성공했다.
▷ 내부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다.
=녹스시작할때 엄청난 내부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신종균 대표와 고동진 사장이 녹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보안솔루션은 업무량이 굉장히 많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까지 다 봐야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정부의 인증까지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인증받기 전까지 갔는데도 내부 반대가 심했다. 검증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신제품에 넣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부터 프로그램자체가 무겁고 리소스를 많이 쓴다는 주장도 나왔다.
▷ 어떻게 설득했나
=갤럭시 신제품 출시가 임박했는데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1년내내 거의 쉬질 못하는 신대표가 설연휴때 미국을 다녀오자고 하더라. 미국 국가안보국(NSA)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출장간 호텔에서 새벽 3~4시쯤 연락이 왔다. 잠이 오지 않으면 운동이나 같이 하자고. 러닝머신 위를 같이 달리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더라. 출장 떠나면서 드린 녹스에 대한 백서를 모두 읽었더라. 미국측과 미팅후 확신을 가진 신 대표는 귀국후 무선사업부 전체 개발임원들을 전부 불러서 혼자서 강의하면서 일일히 반대의견에 대해 설득했다. 단말기 출시 3개월 남겨놓았을때다.
▷ 미국 정부기관들이 삼성 보안프로그램을 쓰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정보기관인 CIA나 FBI는 물론이고 백악관에서도 쓰고 있다. 삼성 보안플랫폼 녹스가 장착된 단말기를 사용한다. 사실 미 정부내에서는 기존의 블랙베리를 바꾸고 싶은 니즈가 컸다. 그 전까지 미국 정부는 별도로 주문해 만든 단말기를 납품받아서 썼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단말기 자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보완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과정에 있었는데 삼성 녹스가 인정받은 것이다.
▷ 삼성내부에서 변화도 많았겠다.
=녹스의 성공은 삼성전자 내에서 작은 그룹이 해냈지만, 삼성 전체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씨앗이 되고 매개가 됐다. 소프트웨어 인력도 500명에서 1000여명으로 확대됐고, 삼성페이도 곧바로 하게 됐다.
▷ 2015년12월에 개발1실장으로 승진하면서 무선사업부 소프트웨어분야를 총괄하게 됐다.
=갤럭시노트7부터가 내가 소프트웨어 전체를 간여하면서 만든 제품이다. 개발실장이었지만 UX 디자인팀장이자 서비스 개발팀장도 맡았다. 심혈을 기울인게 UX였다. 내부 반대도 심했다. 자신의 업적 내세우려고 기존 것들을 다 바꾸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였다. 배터리 사고때문에 내부적으로 아쉬움이 있었지만 소프트웨어적으로 정말 괜찮은 제품이었다.
▷ 이듬해 나온 갤럭시S8은 부담이 많았겠다.
=기존의 단말기 만들 듯이 해선 안되겠다고 봤다. 배터리 보완 만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트웨어에서도 뭔가 역할을 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빅스비가 그 중 하나다. 물론 'S보이스'라는 자체 애플리케이션이 있었지만 애플의 '시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용성을 개선할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제안했다.
▷ 그게 언제였나
=10월에 제안했는데, 삼성에서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 회사 '비브랩스' 인수협상을 진행할 때 였다. 비브랩스는 애플에 있다 나온 사람들이 만든 회사다. 빅스비 솔루션에 적용하려고 했는데 1년반은 기다려야한다고 시간이 짧다고 하더라. 기존 소프트웨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였지만 배터리 이슈에서 고객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획기적인 솔루션을 제공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안주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선도기업으로서의 책임이라고도 생각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니즈와 당위성이 있었기에 토종 자체 솔루션으로 시작했다.
▷ 빅스비는 어떤 서비스인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것이지만, 인공지능 비서로 보기 보단 스마트폰의 사용성을 더욱 좋게 하는솔루션으로 보면 좋겠다. 기존과는 획기적으로 전화기의 다른 인터페이스 만들어보자는게 목표였다. 스마트폰에 있는 다양한 앱과 기능을 사용할 때 터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모두 말로 쉽게 할수 있게 해보자는 것이다. 시리나 알렉사와는 완전히 출발점과 목표가 다른 것이었다.
▷ 하지만 빅스비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통계자료에 기반하지 않는 비판이 많아 안타깝다. 빅스비는 시리처럼 몇가지 기능만하는게 아니다. 빅스비는 6개월만에 사용자가 2000만명을 돌파했다. 이중에 300만~350만명은 매일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런 서비스는 지금까지 없었다. 삼성 역사 상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서비스다.
▷ 글로벌 경쟁사 제품과 비교하면 어떤가
=밀착도(stickiness)라는 통계가 있는데 일사용자를 월사용자로 나눈 값으로 서비스 활성화를 가늠하는 지표다. 월 사용자 가운데 실제로 매일매일 사용하는 비중을 말하는데, 시리는 11% 밖에 안된다. 알렉사가 22%, 삼성은 25~30%에 달한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국제통계자료를 직접 보여줬다.) 알고 쓰는 사용자들은 많이 쓴다는 얘기다. 습관이 되고 익숙해지면 달라질 것이다.
▷ 20일부터 출근하는 구글에서 맡은 EIR(Entrepreneur-In-Residence, 사내기업가)라는 직책은 뭔가
=벤처캐피탈이나 스타트업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자리인데, 구글에서는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은퇴한 사람들을 EIR로 모시고 가서, 그 다음 벤처사업들을 같이 리뷰하면서 직접 사장도 하고 그런다. 지난해 7월에 사의표명하고나서 너무 늦게 새로운 직장을 찾아나섰다. 구글에서 포지션을 찾아주고 팀을 만들어주기까지 시간이 좀 부족했다. 구글에 들어가서 새로할 것을 찾아야할 것 같다.
▷ 삼성전자를 관둔다는 소식에 사실 많이 놀랬다. 의외였다.
=7년전 미국을 떠나 한국에 왔는데 가족들과 너무 오래 떨어져있었다. 떠날때 고등학생이었던 딸은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리더십을 배우겠다며 미군을 자원입대했다. 그런데 이라크로 갈 줄은 정말 몰랐다. 아들도 어느새 대학교 3학년이 됐더라. 미국으로 가야했다. 개발실장으로 맡은 일이나 업무량이 정말 많았다. 고민이 많았다. 7월에 사의표명했는데, 주변에서 많이 놀라고 설득도 많이 했다.
▷ 아쉬움도 많아 보인다.
=삼성내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도 있고, 더 많은 것들을 했어야 하는 아쉬움도 크다. 회사에서 삼성내에서 시간적 여유있는 일을 맡기려고 했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도 있긴했다. 하지만 어차피 하는 일이라면 기존의 기득권을 버리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다. 다른 글로벌기업에 가서 나를 테스트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클수도 있지만 더 많이 커서 나중에 기회가 또 있을수 있지 않겠나. 단말기하고 관련된 일도 아니라서 삼성과는 업무가 크게 겹치진 않는다. 큰 그림에서 봐줬으면 좋겠다.
▷ 인재 욕심이 많은 이재용 부회장이라면 붙잡았을 것 같다.
-미리 말씀드려야했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이 부회장이 붙잡았다면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페이를 비롯한 무선사업부 업무와 관련한 회의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B2B 분야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는데, 혼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내가 B2B 총괄할때는 거의 1주일에 한번씩 회의를 했을 정도다. 녹스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이 부회장이 해외에서 만나는 친구들, 최고경영자들이 삼성제품을 많이 써야한다고 본 것이다. 1등석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삼성으로 제품을 바꾸지 않으면 소용없다. 1등이 되려면 오피니언 리더들이 삼성폰을, 삼성소프트웨어를 쓰는게 중요했다. 이를 위해 투자도 많이 했다.
▷ 이 부회장이 영업하러도 같이 다녔을 것 같다.
-이 부회장과 같이 외국출장을 많이 다녔다. 고객유치를 위해선 세계 어디든 날아갔다. 금융회사나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기관까지도, B2B사업과 관련해 영향력 있는 곳이라면 직접 찾아가 미팅을 가졌다. 고객으로 모시는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 이 부회장과 회의는 어땠나
=지시보다는 질문을 많이했다. '하세요'라는 것은 없었다. 예리한 질문 때문에 실무자들이 쩔쩔매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되돌아봐도 통찰력이 있는 질문들이 많다. 많은 도움 받았다. 당시 나같은 전무의 의견에 대해서도 끝까지 들어주고, 어려운 일이라도 일단 수긍하면 지원을 많이 해줬다. 설득을 통해 리드하고 싶어하는 스타일의 좋은 리더였다.
▷ 리더의 역할은 뭐라고 보나
=듣기의 기술은 말로만 아랫사람 말을 들으라는 것은 아니다. 리더는 직접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두려움없이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한다. 이것을 하려면 상대방이 내가 한 비판에 대해 상처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논쟁에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낸다. 마치 논쟁은 싸우는 느낌을 주고 싸우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안보는 곳에서 서로 비판한다. 싸우는 사람은 조직에 순응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싸움을 잘 하도록 만드는 것이 건강한 조직을 만든다는 사실을 모른다.
▷ 4차산업혁명이 화두다. 한국은 어떤가
=소프트웨어 관련기업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야하고, 발전해야한다. 세계적인 수준에 비하면 너무 쳐져있다. 교육에 있어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 소프트웨어 역량이 부족한데, 투자도 부족하고, 정부규제도 워낙 심한 상태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규제부터 한다. 4차산업혁명을 위해선 앞으로 인공지능하고, 사물인터넷도 해야하고, 블록체인도 해야하는데, 당위성은 알고있지만 가기엔 너무 먼곳에 있다.
▷ 어떻게 해야하나
= 한국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만들어내야한다. 기술투자도 중요하지만, 그걸 갖고 사용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생활패턴을 바꿀수 있는 서비스나 솔루션, 이런 것이 먼저 나와
▷ 앞으로 포부는
=몸은 구글에 가지만, 앞으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해 할수 있는게 있는지 항상 찾아보겠다.
[송성훈 기자 / 황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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