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판타스틱 항해'에는 뇌 혈관을 막는 혈전을 제거하는 초소형 잠수함이 등장한다. 뇌사 상태에 빠진 과학자를 구하기 위해 특수요원들은 '다운사이징'돼 잠수함과 함께 혈관으로 투입된다. 이 영화는 여전히 '허구'일 뿐이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연구진이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첫 발을 내딛는데 성공했다. 박테리아를 개조해 체내에서 '음파'를 반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마치 잠수함이 '소나'를 이용해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처럼 이 박테리아를 이용하면 체내에 넣은 박테리아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파악해 낼 수 있다.
칼텍 화학공학과 연구진은 유전자 조작을 이용해 음파를 튕겨낼 수 있는 박테리아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최신호에 게재됐다.
과학자들은 체내에 존재하는 어떤 물질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녹색형광단백질(GFP)'를 이용했다. 해파리에서 발견된 GFP 단백질을 특정 세포에 주입한 뒤 자외선을 쏴주면 녹색의 빛을 발산한다. GFP는 특히 신약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암을 일으키는 단백질에 GFP를 끼운 뒤 이를 쥐에 넣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내에서 암세포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신약에 GFP를 넣고 동물에게 투여한 뒤 자외선을 쏴주면 신약이 체내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과학자들이 GFP를 '21세기 현미경'이라고 불렀던 이유다. 하지만 한계가 존재했다. 유전자를 동물에 심는 과정에서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뇌에 GFP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두개골을 열고 자외선을 쏴줘야만 했다. 사람에게 바로 GFP를 투여할 수 없는 이유다.
연구진은 GFP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음파'를 이용하기로 했다. 음파를 체내로 쏴주면 여러 장기, 혈관 등에 반사되어 돌아온다. 이 시간을 계산하면 영상처럼 볼 수 있다. 뱃속 아기를 볼 때 사용하는 초음파 역시 이같은 원리를 활용한다. 박테리아는 음파를 반사해 내지 못하지만 '기포'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남조류와 같이 물에 뜨는 미생물의 세포벽에는 부력을 만들어주는 기포가 존재한다. 공기로 가득 차 있는 이 기포는 음파를 반사시킬 수 있다. 연구진은 물에 사는 박테리아의 유전체를 분석해 기포를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이를 '프로바이오틱스'를 만들 때 활용되는 대장균에 넣자 기포가 생성되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기포를 갖고 있는 대장균을 쥐에 투여한 뒤 초음파를 쏘자 음파가 반사되면서 대장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며 "우리는 초음파 이미징 기술에 활용할 수 있는 첫 번째 음향 전달 박테리아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쥐의 소화관과 종양 속에 있는 대장균을 초음파 기술만을 활용해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연구진의 최종 목표는 프로바이오틱스가 장, 위까지 살아 들어가 질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우리 몸속을 돌아다니며 질병을 치료하는 박테리아를 개발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우리의 두 번째 목표는 체내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의 위치를 알아내는 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라며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과 함께 '무엇을 하고 있니'라고 물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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