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증으로 깡마른 여성과 비만인 여성의 경우 몸무게는 정반대지만 똑같은 우울증 증상을 겪는 것으로 하버드대 임상 결과 드러났다. 저체중과 과체중 여성을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 물질이 같다는 것이 확인됐다.
최근 시카고 일리노이대(정신과) 연구팀은 양극단의 체중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여성들의 경우 정상 체중 여성들에 비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알로프레그나놀론(allopregnanolone)'이란 신경 스테로이드 수치가 절반(50%) 이상 낮다고 밝혔다. 기분과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뇌를 진정시켜주는 성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카렌 밀러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평균연령 26세의 여성 36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다. 12명의 거식증 및 월경불순 여성(체질량지수 18.5 미만), 12명의 정상 체중 여성(19~24), 12명의 과체중 여성(25 이상)을 모은 뒤 우울·불안 설문과 혈액 검사를 동시에 실시했다.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과거 우울증을 진단받거나 항우울제를 처방을 받은 이력이 있는 사람들은 제외했다.
실험 결과, 저체중과 과체중 환자들의 알로프레그나놀론의 혈중농도가 정상 대비 평균 50% 낮게 나타났다. 특히 비만인 여성에게서는 60%나 낮았다. 또한 설문 결과 이 같은 혈중농도와 우울증 및 불안 증상 정도가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그 동안 섭식장애의 일종인 거식증과 비만은 전혀 다른 별개의 질환으로 취급됐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도 불리는 거식증은 비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식사를 거부하거나 꺼리는 증상으로 젊은 여성층에서 많이 나타난다. 대개 서구 문화권에서 외모, 몸매, 체중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생긴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면서 심리 치료와 인지행동 치료의 영역이 됐다. 반면 비만은 단순 신진대사와 유전적 문제로 간주돼 일반적인 식이조절, 약물이나 외과 수술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체중까지 '극과 극'이다보니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부각됐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두 질환의 공통점을 밝혀냈다. 성호르몬 프로게스트론의 대사 산물인 알로프레그나놀론이 부족해 우울증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알로프레그나놀린은 우울·불안과 관계된 뇌의 신경전달물질 'GABA-A' 수용체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수치가 떨어지면 기분이 나빠지게 된다. 실제로 '벤조디아제핀' 같은 항우울·불안 치료제들의 표적 수용체기도 하다.
그라지아노 피나 일리노이대 교수는 "알로프레그나놀론이 우울증, 불안증,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기타 기분 장애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기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실제 우리가 인식하는 수준보다 컸다"고 말했다. 현재 거식증으로 시름하는 여성의 50%, 비만인 여성의 43%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프로게스테론이 알로프레그나놀론으로 전환되는 대사 과정에서 효소가 잘 작동하지 않아 수치가 낮아진 것으로 보고, 이 같은 효소의 활동을 촉진하면 우울증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피나 교수는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정확히 어떤 프로게스테론 대사 과정에 결함이 있는지를 규명하면 알로를 바이오 마커로 사용한 맞춤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렌 밀러 교수 역시 "체중이 극단적으로 많거나 적게 나가는 여성에게서 우울증이 심각하기 때문에, 호르몬과 신경 자극성 대사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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